리세션(recession, 경기침체) 공포가 커지고 있다. 리세션은 경기가 활력을 잃고 전반적으로 축소되는 현상을 말한다. 미경제조사국(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에서는 실질 GDP가 2분기 연속 감소하면 리세션으로 정의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대표적인 리세션으로, 1920년대말 경제대공황인 그레이트 디프레션(the Great Depression)에 빗대어 이 시기를 그레이트 리세션(the Great Recession)으로 부른다.
2022년 10월 머서(MERCER)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리세션 중에 있거나 리세션에 접어든다고 응답한 CEO와 CFO는 87%에 달한다. 이 중 절반은 리세션이 향후 1~2년 동안 지속되리라 예상했다. 리세션은 분명 힘든 시기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재무상황이 악화되는 등의 어려움을 겪는다. 반면 리세션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기업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서 밝힌 연구에 따르면, 리세션 시기를 거친 4700여개 미국 공기업 중 17%는 파산, 민영화 또는 다른 기관에 인수됐지만, 9% 기업은 리세션 후 크게 반등하여 매출과 이익성장 측면에서 경쟁기업을 10% 이상 능가했다. 글로벌 컨설팅사 베인앤컴퍼니(Bain & Company)의 보고서에서도, 상위 10% 기업은 글로벌 금융위기 내내 실적이 꾸준히 늘어난 모습을 볼 수 있다. 과연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그리고 리세션이 다가오는 지금, HR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리세션 시기에는 대체로 인력감축을 불가피한 조치로 받아들인다. 많은 이들이 인력감축이 인건비 절감으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리세션 이후의 재고용과 교육훈련을 감안하면 인력감축은 장기적으로 비용이 더 드는 조치일 수 있다. 심지어는 인력감축이 주가와 수익 등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연구도 발견된다. 비용 효익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인력감축이 구성원 사기와 조직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경기침체를 예상하며 구조조정을 고민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인력감축 칼바람이 분다는 소식에 구성원은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2022년 12월 직장인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8명은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단기적 이익개선 조치이긴 하지만, 인력감축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업이미지 훼손, 숙련된 인적자원 유실, 구성원 몰입 악화, 자발적 이직 증가는 기업의 장기적 이익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건비 절감이 목적이라면, 인력감축 만이 인건비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근로시간 단축, 유연근무, 무급휴가, 성과급 재설계 등도 인력감축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대안이다. 일시적 휴직이나 근로시간 단축, 성과급 재설계 등이 매력적인 점은 기업이 근로자에 대해 여전히 재량권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괄적인 인력감축은 구성원 사기를 꺾는 한편, 우수인재의 자발적 이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리세션 경영환경과 씨름하면서 조직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사항은 현재 구성원이 경영상황을 극복하고 이후 턴어라운드를 하는데 필수적인가의 여부다. 단기적 재무상황을 무시할 순 없지만, 인적자원이 조직의 지속성과를 창출하는 궁극적인 생명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를 보다 유연화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라파엘라 사둔과 연구진은 어떤 형태의 조직이 리세션을 효과적으로 헤쳐나가는지를 연구했다. 공장관리자가 제품생산, 판매 및 직원고용에 얼마나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지와 이러한 조치가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는데, 의사결정 권한이 많은 조직일수록 급작스러운 위기상황에 보다 잘 대처하고 리세션으로 인한 타격도 상대적으로 덜 받았다. 이는 곧 조직성과로 이어졌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분권화에 따른 이점은 경기상황이 개선되면서 감소했다는 부분이다. 이는 리세션 시기에 현장의 자율권이 특별한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리세션 시기가 닥치면 우리는 흔히 중앙집중형 조직을 떠올린다. 현장 상황에 맞춰 각 사업부나 단위조직에서 자율적 의사결정을 하기보다는, 많은 부분을 중앙에서 통제하고 관리하는 조직운영을 선호한다. 이러한 조직운영 방식이 리세션을 극복하는데 효과적이라 가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선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연구결과는 반대의 시사점을 보여준다.
분권화된 조직이 리세션 시기에 도움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에서 말하는 메시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리세션 환경에 대한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는 점이다. 리세션은 많은 불확실성과 혼란을 가져온다. 중앙집중 경영으로 불확실성에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지만, 모든 불확실성을 중앙에서 모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의사결정과 그 실행 권한을 현장으로 그리고 아래로 이동시킬 때, 변화하는 상황에 보다 애자일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연구진은 강조한다. 예를 들어, 시장수요 변화에 맞춰 필요한 인력을 즉시 채용하거나 동결하는 결정을 현장에서 수시로 행하는 게 보다 적절하다는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는데 있어 도전과 실험은 필수적이다. 도전과 실험으로 쌓인 결과는 리세션은 물론이고, 리세션 이후의 기업성과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리세션은 변화의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기회를 위기로만 인지하고 의사결정을 주저할 때 기회는 곧 위기가 된다. 리세션을 앞둔 지금, 애자일한 의사결정을 돕는 조직운영을 고민할 시기다.
결국 리세션 속에서 차이를 만드는 비결은 준비에 달렸다.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침체된 기업 중 "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미리 세우거나 대안적 시나리오 준비한 기업은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대부분 기업이 리세션이 닥쳐서야 반사적으로 생존모드를 발동해 보수적인 경영방식으로 전환하는 편이라는 것이다. 전면적 비용절감을 리세션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가정하고 예산삭감, 인건비 축소, 채용동결, 정리해고 등의 조치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이런 대증적 접근이 정답일 수는 없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경영환경 속에서 대응적이고 보수적인 전술만을 펼치는 HR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이에 따른 컨틴전시 플랜을 준비하는 자세가 리세션 시기에 HR이 취할 보다 바람직한 모습이다. 변화에 맞춘 발빠른 태세 전환과 대응이 조직분위기를 회복시키고 성과를 만드는데 보다 유리하다. 리세션을 앞둔 우리 회사의 상황은 어떠한가, 리세션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인재는 누구인가, 우수인재에서 우리회사는 충분한 매력을 제공하는가 등을 가늠해보며 우리 기업만의 HR컨틴전시 플랜을 고민해 보자.
김주수 MERCER Korea 부사장 / HR컨설팅 서비스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