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 13일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연 3.5%로 올렸지만 국채 금리는 2년 만기, 3년 만기, 5년 만기, 10년 만기, 30년 만기 등을 비롯해 대부분 중장기물이 기준금리 밑으로 떨어졌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연내 기준금리 인하를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혔지만 채권시장에선 벌써 기준금리 인하에 베팅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년 만기 국채 금리<기준금리</span>
1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채시장에서 벤치마크(기준)인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13일 0.097%포인트 하락한 연 3.369%에 마감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렸는데 국채 금리는 오히려 더 떨어진 것이다. 이날 3년 만기 국채 금리와 기준금리가 2020년 3월 이후 2년10개월 만에 뒤집어졌다. 기준금리는 한은이 금융회사에 7일물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각할 때 적용하는 금리다. 채권은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은 게 ‘정상’인데, 시장에선 정반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3년 만기 국채뿐만이 아니다. 2년 만기(연 3.441%), 5년 만기(연 3.275%), 10년 만기(연 3.301%), 30년 만기(연 3.355%) 등 다른 중장기 국채도 대부분 기준금리를 밑돌았다. 현재 국채시장에서 기준금리보다 금리가 높은 건 1년 만기 국채가 유일하다. 1년 만기 금리는 연 3.566%로 기준금리보다 겨우 0.066%포인트 높다.
대부분 국채 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낮아진 것은 한은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종료되고 이제 기준금리가 인하될 일만 남았다는 전망이 커졌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힘들 것이란 관측은 한은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올리지 말자’는 동결 의견을 낸 금통위원이 2명이었다.
최종 금리(금리 인상 사이클의 정점)와 관련해서도 이 총재를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 중 3명이 연 3.5%, 나머지 3명이 연 3.75%를 제시했다. 게다가 연 3.75%를 제시한 위원들에 대해 이 총재는 “반드시 올린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금리 추가 인상을) 배제하지 말자는 의견”이라고 전했다.
금통위의 통화정책방향 결정문도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 색채가 강해졌다. 금리 인상의 파급효과와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를 점검하겠다고 밝히며 기존에 있던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는 문구를 삭제하면서다. 대신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해 갈 것’이란 문구가 추가됐다.
‘금리 역전’ 뒤 기준금리 인하 잇달아
한은은 금리 인하 가능성엔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금통위 후 기자간담회에서 “물가가 목표 수준(상승률 2%)에 수렴한다는 확신이 있기 전까지 금리 인하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했다.시장에선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금통위 직후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기준금리보다 크게 낮아졌다”며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와 물가 하락 가능성에 따라 금리 하락에 대한 베팅이 확대된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선 국채 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낮아진 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3년 만기 국채금리와 기준금리가 역전된 2020년 2~3월을 보면,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2월 말부터 17거래일 연속 기준금리(당시 연 1.25%)를 밑돌았다. 이후 한은은 기준금리를 연 0.75%까지 낮췄다. 당시는 코로나19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확산했을 때다.
2012년 7~8월에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3년 만기 국채 금리가 기준금리 이하로 떨어진 뒤 3개월 만에 한은의 금리 인하 사이클이 시작됐다. 이번에 국채 금리와 기준금리가 역전되자 시장에서 연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베팅하는 기류가 확산한 배경이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경기 침체 우려와 주요국 인플레이션 둔화로 세계적으로 금리 인상 기조는 마무리될 것”이라며 “(한은 금리 인상 사이클도) 조기 종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JP모간은 한은이 연 3.5%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전망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