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최대 럭셔리 화장품 유통채널인 페이시스의 색조화장품 순위에 이변이 발생했다. 매출 1위 ‘디올’에 이어 2위에 한국 중소기업에서 만든 신진 브랜드가 들어갔다. 현지에서 ‘샤넬’, ‘랑콤’, ‘에스티로더’를 제친 한국 색조화장품은 바로 바람인터내셔날이 만든 ‘디어달리아’다.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명품 시장을 겨냥해 제품을 개발한 바람인터내셔날에 대해 업계는 ‘무모한 도전’이란 평가를 내렸지만 출시 5년 만에 ‘뷰티 본고장’인 프랑스를 비롯해 폴란드, 독일, 카타르 등 국내 업체들이 진출하지 못한 시장을 뚫었다. 작년 말까지 총 259개의 해외 매장을 확보했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디어달리아는 지난해 페이시스 UAE에서 색조 부문 매출 2위, 페이시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5위를 차지했다. 페이시스는 UAE,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9개국에 85개 매장과 온라인 플랫폼을 갖춘 중동지역 최대 럭셔리 화장품 유통업체다. 지난해 말 페이시스는 박래현 바람인터내셔날 대표를 UAE 두바이에 있는 본사에 초청해 이 같은 디어달리아의 성적표를 공개했다.
그동안 ‘K뷰티’는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부상해오다 코로나19 이후 중국 보따리상이 실종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럭셔리 시장은 진입조차 못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해외 럭셔리 시장을 파고들어 성과를 낸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는 평가다.
디어달리아는 유럽 시장에서 먼저 두각을 드러냈다. 2019년 프랑스 백화점 갤러리라파예트에 정식 입점했고 지난해 유럽 19개국에 1900여 개 매장을 보유한 ‘더글라스’를 뚫어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벨기에까지 진출했다. 폴란드에선 현지 요청으로 총 77개 매장까지 입점을 늘렸다. 지난해 말 기준 디어달리아의 해외 매장 수는 32개국 259개에 달한다. 2020년 69개에서 네 배 가까이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럭셔리 시장, 특히 다양한 피부색을 고려해야 하는 색조 분야에서 한국 브랜드가 경쟁하기는 쉽지 않다”며 “디어달리아의 해외 개척은 대형 화장품 업체도 해내지 못한 성과”라고 했다.
디어달리아를 만든 박 사장은 삼양사에서 유럽 유통을 담당하던 ‘해외 영업통’이었다. 다른 화장품 업체들이 현지 총판이나 벤더를 끼고 해외 진출하는 것과는 달리, 디어달리아는 직접 해외 유통사를 접촉해 브랜드와 제품을 알리고 마케팅 전략을 짠 것이 주효했다.
디어달리아는 2017년 국내에선 생소하던 비건 화장품으로 등장했다. 엄격하기로 유명한 국제 동물 보호 단체 ‘페타’와 영국 ‘비건 소사이어티’로부터 비건 인증을 받았다. 새로운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선 단박에 눈길을 끄는 패키지도 필요했다.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들어 화장품 용기업체들이 기피하는 팔각형 케이스를 고집한 이유다. 김태훈 바람인터내셔날 영업본부장은 “‘집요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디자인과 품질에 투자를 해왔다”며 “해외 유통사와 직접 계약해 브랜드 전략을 짜는 것이 큰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바람인터내셔날은 LB인베스트먼트, 쿼드자산운용 등 재무적 투자자뿐 아니라 아모레퍼시픽그룹, 제이에스코퍼레이션, 한국콜마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중장기적으로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계획이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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