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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상명하복 문화가 부른 금융권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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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시중은행에서 불거진 부장급 간부의 ‘갑질’ 사건이 공분을 불렀다. 이 사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충격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우선 그 내용이다. A부장은 “밖에서 사 먹는 김밥이 질린다”며 직원들에게 김밥을 싸 오라고 시켰다. 실적을 못 채운 직원에겐 벌금 100만원을 물렸다. 부하 직원과 100만원짜리 스크린골프 내기를 해 돈을 받거나 뺨을 때리고 폭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충격’은 이런 일들이 서울 본점에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 은행 본점 건물엔 은행장과 부행장 16명 등 주요 경영진이 직원들과 함께 근무하고 있다. 이전에도 A부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여태껏 관련 조사나 인사 조처는 없었다고 한다. 감찰 시스템을 허술하게 관리한 경영진 책임도 크다는 비판이 많다.

피해자의 부인이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 A부장의 갑질을 폭로하자 ‘늑장 감찰’이 시작됐고, 은행은 A부장을 대기발령했다. 추가 조사 후 징계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자체 징계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이 사건을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고용노동부도 특별근로감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금융업계에서 갑질 논란이 불거진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북 남원의 동남원 새마을금고에선 상급자가 여직원에게 밥 짓기와 화장실 수건 빨래, 회식 참여를 강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의 한 신협에서도 회의·술자리 폭언, 자녀 등·하원 등 개인적인 용무 지시, 여직원에게 술 따르기 강요 등의 문제점이 적발됐다.

이처럼 갑질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은 금융권 특유의 수직적 조직문화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최근엔 상향 평가 비중이 높아져 선배도 후배 눈치를 보는 분위기”라면서도 “다만 우리는 고객의 돈을 다루는 일을 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조직문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여전하다”고 했다.

치열한 승진 경쟁 탓에 ‘상명하복’ 문화가 강화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과거와 달리 부장(지점장급) 승진조차 어려워지면서 은행원들은 자신의 성과급과 승진을 좌우하는 핵심평가지표(KPI)에 죽기 살기로 달려들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만약 KPI에 ‘통일’을 넣으면 남북통일도 이뤄질 것”이란 우스개가 돌아다닐 정도다.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면서 직장 내 갑질은 일부 해소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 법에도 한계는 있다. 이 법은 괴롭힘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지, 괴롭힘 자체에 대한 형사 처벌 규정은 없다. 근본적인 조직문화 개선 없이는 직장 내 갑질을 근절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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