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과 동일한 처우를 해달라며 공공부문 무기계약직(공무직) 근로자들이 제기한 소송 결과가 최근 속속 나오면서 화제다.
공무직의 처우 개선 자체에는 반대하는 입장이 많지 않은 반면, 공무원과 동일한 처우를 해달라는 요구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상당한 반발감이 표출되고 있다. 결국 법원까지 향한 이 논란, 어떤 쟁점이 있을까.
◆잇따르는 무기계약직 소송...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산물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15일 고용노동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농촌진흥청, 광주지방·고등법원, 충북대, 충남대 등 공공부문에서 청소, 회계, 민원안내 등을 담당하는 공공부문 무기계약직(공무직)들이 정부를 상대로 “공무원과 수당을 동일하게 달라”며 청구한 3억4000만원 규모의 임금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이들은 일반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가족수당, 자녀학비보조금, 복지포인트, 명절 휴가비를 자신들에게 지급하지 않은 것은 "동일한 집단을 차별해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위반"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이 소송은 서로 다른 기관의 공무직들이 함께 제기한 소송인만큼 큰 주목을 받았다.
이런 소송의 단초는 2017년 시작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었다. 당시 정부는 '비정규직 제로'를 모토로 공공부문 계약직 근로자들을 무기계약직(공무직)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정부 통계 기준으로 무기계약직도 '정규직'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전환 정책은 정부의 압박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정작 전환된 근로자들의 처우에 대한 대책은 마련하지 않았다. 인건비 급증 등 현실적 제약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무직들은 장기근속을 보장받았지만, 처우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다.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을 정규직이 아닌 ‘중규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결국 이들은 잇따라 소송을 제기했다.
◆무기계약직 "우리가 노비냐...'신분 차별' 말라"
공무직·사기업 무기계약직 차별의 근거로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또 근로기준법 6조(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적 처우 금지), 남녀고용평등법 8조(동일 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한 임금 지급)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다만 헌법상 '평등의 원칙'은 무조건 같게 취급하라 게 아니다. '본질적으로 다른 집단' 사이에 합리적 차별은 인정한다. 결국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이 '본질적으로 같은 비교 집단'인지가 중요하다. 여기서 법원이 가장 비중을 두는 기준은 '동일한 가치의 근로'를 제공하고 있는지 등이다.
또 무기계약직을 근로기준법 6조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사회적 신분'으로 볼 수 있는지도 중요한 쟁점이다. 사회적 신분이라면 수당이나 임금을 다르게 주는 것은 엄연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사회적 신분을 “선천적 또는 후천적으로 쉽게 변경할 수 없고(고정성), 일정한 사회적 평가가 수반되는 것”으로 정의하면서, 무기계약직은 ‘사회적 신분’이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다. 무기계약직은 성별이나 봉건시대 노비처럼 고정된 신분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하급심 법원에서 잇따라 사회적 신분을 ‘사회에서 장기간 점하는 지위로서 일정한 사회적 평가, 특히 열등하다는 평가를 수반하는 것’으로 완화하는 해석을 내놓으면서 법원의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이 판결에 따르면 결국 무기계약직도 사회적 신분이 될 수 있다(서울남부지법 2014가합3505, 서울중앙지법 2017가합507736).
비록 지난 2019년 12월 대법원이 무기계약직 근로자 A씨 등 7명이 대전문화방송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지만(2015다254873), 전체 무기계약직에 적용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법원 "공무직, 공무원과 본질적으로 달라"...'신분' 여부는 판단 엇갈려
앞서 언급된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은 “청소, 회계, 민원안내 등은 본질적으로 공무원 업무와 동일한 가치가 아니므로, 수당을 차별 지급하는 것은 불합리한 차별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특히 재판부는 ‘무기계약직’은 ‘사회적 신분’이 아니라고 봤다. 즉 “사회적 신분은 '고정적'이거나 '선택이 불가능'해야 하지만 무기계약직은 그렇지 않다. 사용자가 무기계약직을 일방적으로 강요한 게 아니다”라며 기존 대법원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유사한 쟁점의 다른 판결도 잇따랐다. 서울중앙지법은 법무부 소속 공무직 노동자 581명이 법무부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법무부가 근로자들에게 약 23억4900만원을 지급하라고 지난달 23일 판결했다.
이 사건은 공무원과 공무직 간 차별이 아니라, 공무직 사이에서 발생한 차별 사건이다. 같은 법무부 소속인데, 어떤 하부조직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수당을 차별 지급했다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행정사무 보조, 조리, 운전 등을 하는) 원고들의 업무는 (속해있는) 기관에 따라 내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며 "서로 다른 기관에 소속돼 있다는 사정만으로 비교집단임을 부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공무직들은 소속 기관에 상관 없이 본질적으로 같은 집단이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한편 "동일한 신분을 가진 자들 사이의 차별적 대우도 근로기준법 6조에서 금지하는 차별에 해당한다"며 마치 무기계약직이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는 것처럼 봤다. 사회적 신분 여부를 두고서는 아직 법원도 결론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무기계약직들의 소송에 대해 부정적 움직임이 포착된다. '공정'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은 "채용 과정이 엄연히 다르다"며 공무원과 동일한 처우는 되레 역차별이라는 주장을 내세운다. 같은 공공부문의 젊은 공채 출신 근로자들과 무기직 출신들이 갈등을 빚는 사례도 적지 않다.
법조계에서도 '채용절차의 상이함'도 두 집단이 '본질적으로 다른' 주된 근거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법원도 이런 일반인들의 법감정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근로자들의 권리의식 신장과 더불어 상대적 박탈감은 결코 참을 수 없다는 의식 등이 확대되면서 무기계약직 차별, 채용경로 차별 등이 화두"라며 "무기계약직 직군 등 정규직과 다른 직군을 운용하는 기업에서는 앞으로 제기될 소송에 대비해 정규직과 업무 내용에 본질적인 차이가 여부를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