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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필은 신년 음악회 레퍼토리 '파격 변신'에도…앙코르만은 남겨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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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오스트리아 빈 무지크페라인 황금홀. 새해 첫날이면 어김없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신년 음악회를 연다. 화려한 금빛 공연장에서 흘러나온 세계 최정상 악단의 선율은 세계 90여 개국에서 울려 퍼진다. 음악회에는 매년 등장하는 단골손님이 있다. 앙코르곡 자리를 고정으로 꿰차고 있는 두 개의 작품.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도 역시 앙코르곡은 변치 않았다. 오스트리아 출신 최고 거장으로 ‘슈트라우스 전문가’로 불리는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지휘봉을 잡았는데도 그랬다. 그는 음악회 레퍼토리 18곡 가운데 14곡을 새로운 작품으로 채우는 파격을 선보이면서도 앙코르곡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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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39년 12월 31일 시작해 1941년 1월 1일부터 신년 음악회 명맥을 이어온 이 공연에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새해 인사를 마치는 것은 무언(無言)의 약속으로 통한다. 오스트리아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父子)의 작품은 빈 왈츠 자체를 뜻할 정도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슈트라우스 1세가 즐겁고 리듬감 넘치는 음악으로 농민의 춤에 뿌리를 둔 왈츠의 대중화를 이뤄낸 인물이라면, 그의 아들 슈트라우스 2세는 오스트리아의 대표 음악 장르로 왈츠의 예술적 가치를 끌어올린 인물이다.

그러나 단순히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에 대한 애정만이 ‘라데츠키 행진곡’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에 대한 오스트리아인의 오랜 지지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는 피로 물든 황폐한 전쟁 속에서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절망을 맛봤던 오스트리아인들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란 점에서 가치가 높다.


먼저 ‘라데츠키 행진곡’은 슈트라우스 1세가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육군 원수인 요제프 라데츠키 폰 라데츠를 위해 작곡하고 헌정한 작품이다. 더 자세히는 라데츠키가 이끈 오스트리아 제국군이 1848년 이탈리아의 독립운동을 진압하고 개선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그해 8월 초연됐는데 당시 음악을 들은 오스트리아인들이 연속 세 번 앙코르를 외치며 모두 일어나 손뼉을 치고 발을 굴렀다는 일화에서 ‘라데츠키 행진곡’ 특유의 박수 문화가 생겨났다. 늠름한 장군의 모습을 표현하는 금관악기의 풍부한 음량과 흥겨운 선율로 오랜 기간 빈에서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상실의 아픔을 지닌 이탈리아에서는 적국의 음악으로 현재까지도 연주가 제한되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승리의 환희가 있다면 패배의 고통도 따르기 마련이다.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패전 이후 심각한 좌절과 상실감에 빠진 국민을 위해 고안된 작품이다. 1866년 오스트리아가 쾨니히그레츠 전투에서 프로이센에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뒤 사회 전반에 내려앉은 우울감을 달래고자 빈 남성합창단 연합이 슈트라우스 2세에 작곡 의뢰를 한 작품이라서다.

취지는 좋았으나 슈트라우스 2세가 작곡한 남성 합창곡의 초연 반응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나중에 그가 합창을 배제한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작품이 성공을 거두면서 현재까지 주로 오케스트라 연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공허함, 절망 등 부정적 감정을 환기하고 쾌활한 분위기를 일으키고자 했던 이 곡은 현재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제2의 국가로 여겨진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에서는 악단과 청중이 함께 지켜야 하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연주가 시작되면 관객들이 손뼉을 쳐서 음악을 중단시키는 것이 일례다. 관객이 지휘자에게 신년 인사를 건넬 시간을 주는 유쾌한 방식으로 통한다. 지휘자가 짧은 인사를 마치고 뒤돌아 손을 올리면 비로소 작품의 서주가 시작된다. 긴장감 넘치는 바이올린의 트레몰로(활로 음을 빠르게 되풀이하며 떨듯이 연주)에 홀 전체를 울리는 호른의 웅장한 음색이 더해지면 애수에 찬 선율이 마음껏 매력을 뽐낸다. 이후 연주 속도가 점차 빨라지면서 밝은 분위기로 전환되면 현악기가 호른의 주선율을 함께 연주하는 제1 왈츠가 이어진다.

이때 빈 왈츠 특유의 박자 표현에 집중한다면 현지에서 들려오는 음악의 진가를 온전히 맛볼 수 있다. 세 박 중 첫 박을 짧게, 둘째 박을 조금 더 길게 연주해 마치 박자가 뒤로 쓰러지듯 들리도록 연주하는 것이 빈 왈츠의 고유 특징 중 하나다. 관악기가 스타카토(음 하나하나를 짧게 끊어서 연주)로 가벼운 분위기를 드리우는 제2 왈츠에선 하프의 편안하면서도 신비로운 선율이 귀를 사로잡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어지는 제3 왈츠는 밝고 우아한 선율이 책임진다. 비교적 단순한 선율 진행이 마음을 안정시키는 구간이다. 이후 강렬한 악센트(특정 음을 세게 연주)로 등장하는 제4 왈츠는 고풍스러운 선율 진행 중 이뤄지는 생동감 넘치는 리듬을 특징으로 한다.

마지막 제5 왈츠에서는 관악과 현악을 아우르는 경적과 같은 소리가 분위기 반전을 알린다. 3박의 왈츠 리듬이 가장 명확히 발현되는 구간으로 빠르게 상행하는 선율과 강한 셈여림 속 경쾌하고 화려한 음향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후주에서는 호른의 주선율이 다시 등장하는데, 처연한 분위기에 모두가 방심하는 순간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전체 악기가 연주 속도를 순식간에 높이면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 관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그렇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화려하게 끝을 맺으면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이 박수 소리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 재치 있게 등장한다. 이 곡의 매력을 온전히 살리는 데에 관객의 호응이 절대적이어서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 음악회에서는 지휘자가 청중을 향해 몸을 돌려 박수 소리의 음량을 조율하는 퍼포먼스를 보이면서 연주를 이어간다. 지휘자 손짓에 따라 박수 소리가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나기도, 소리가 커졌다가 다시 줄어들기도 하는 이 장면은 신년 음악회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명장면으로 꼽힌다.

전통과 형식을 중시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무대에서 이례적으로 청중과 연주자가 하나가 돼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순간으로 여겨져서다. 2박자 계열의 단순한 리듬, 명료한 선율로 행진곡 특유의 경쾌함을 온전히 살려낸 이 작품에서는 곳곳에 등장하는 짧은앞꾸밈음(본래 음 앞에 다른 음을 아주 짧게 연주), 트릴(두 음을 교대로 빠르게 연주) 등 장식음에 귀를 기울이면 곡의 화려함과 흥겨움을 배로 느낄 수 있다.

김수현 문화부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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