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1월 04일 16:0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거시경제 환경이 매우 어렵다. 코로나 위기를 겨우 극복했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최근 수십년간 보지 못했던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마주하고 있다. 물가 안정을 위해 세계 각국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인상하자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로 국내외 주가지수는 최근 12개월간 큰 폭으로 하락했다.
그러자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 한전채 금리 급등락, 부동산 PF 우려 등의 다양한 이슈로 국내 채권 시장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시장 급락에 대한 걱정도 크다. 또한 본격적인 핀테크 시대의 도래로 기존의 전통적인 은행 산업은 앞으로 사양 산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최근 수년간 대세를 이루기도 했다.
이러한 여러가지 상황들의 종합적인 결과는 한가지 숫자로 압축된다. 한국금융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국가별로 은행의 평균 PBR(별첨1 참고)을 비교했을 때 한국은 0.36배로 2021년 기준 글로벌 100대 은행 소속 22개국 중 21위를 차지했다. 은행의 자산과 부채는 그 특성상 실질가치가 장부가치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데, PBR이 0.36배라면 경제적으로는 사업을 지속할 이유가 없으며, 회사를 청산하고 주주들에게 자본금을 돌려주어야 하는 수준이다. 0.36배도 심각한데, 작년말 기준으로는 PBR이 0.31배까지 하락했다. 사실 2011년 7월경 마지막으로 PBR 1배 이상을 기록한 이후 최근 12년간 우리나라 상장 은행지주사들의 PBR은 추세적으로 하락해왔다. 연기금이나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펀드, 그리고 대형 외국인 기관투자자를 제외하면 주변에서 은행주에 투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필자는 운용자산의 큰 부분을 은행에 투자하고 있다. 투자 대상으로 흥미로운 역사적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 중 가장 큰 세 가지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 은행들의 질적으로 향상된 건전성이다. 많은 우리나라 은행들이 외환위기 때 사실상 망했고,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겨우 살아남았다.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이후 조선, 해운, 건설 등 경기민감업종을 영위하는 대기업에 대규모 대출을 집행했던 은행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아픈 기억으로 인해 경기 침체가 왔을 때 대규모 대손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 심지어 은행이 망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항상 존재한다. 부실우려가 매우 큰 중국 은행들보다도 우리나라 은행들이 낮은 밸류에이션에 거래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실제로는 과거의 위기들을 거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은행들의 자산건전성은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왔다. 우리나라 은행의 담보 별 원화대출금 비중을 살펴보면 대출의 약 77%는 보증서가 있거나 부동산 등 담보가 있다(별첨2 참고). 또한 부동산담보대출의 경우 지난 수년간 LTV(담보가치 대비 대출비율)가 계속 낮아져서 2022년 1분기 기준 39%에 불과하다. 이는 해외 대비 크게 낮은 수준으로, 부동산 가격이 상당히 하락한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대기업에 대한 대출 비중도 크게 감소했다. 과거에는 경기민감 업종을 영위하는 동일 대기업 계열에 대규모 자금을 집중적으로 빌려주었다가 해당 대기업이 부도가 나면서 은행들이 한번에 대규모 부실을 안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없다는 뜻이다.
지표적으로도 상당히 건전하다. 2022년 3분기 기준 자본 적정성 지표인 CET1(보통주자본비율)의 경우 7대 상장 은행지주 평균 11.9%(금융위원회 가이드라인 9.5~10.5%, 해외은행 평균 11.9%)로 자본적정성 측면에서 크게 부족함이 없는 상황이다. 또 NPL 비율(총 여신 대비 고정이하여신의 비율)은 최근 3년 동안 꾸준히 낮아지고 있으며 2022년 3분기 기준 우리나라 4대 시중은행의 NPL Coverage 비율(대손충당금 적립잔액/고정이하여신)은 평균 209%에 육박해(별첨3 참고) 역대 최고 수준이다.
두 번째로, 향후 디지털화 진전과 핀테크 업체들의 등장으로 오히려 추가적인 영업효율성 개선과 비용 절감이 있을 수 있다. 사실 인터넷(모바일 포함) 뱅킹 거래 비중으로 본다면 우리나라 은행들의 디지털화는 세계에서 최고 수준이다. 인터넷(모바일 포함) 뱅킹의 성장(별첨4 참고)과 시중은행 점포 수 감소(별첨5 참고)로 인한 CIR(이익경비율) 감소 및 수익성 증대가 기대된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인터넷 은행의 부상은 사실 기존 은행들에게는 비수익 점포 폐쇄나 인력 효율화 등을 통한 체력 개선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디지털화의 진행과 함께 점포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크게 줄어들면서 은행들은 최근 수년간 대규모의 희망퇴직을 매년 연말마다 실시하고 있는데, 국내은행의 고정비 부담이 상당히 높은 점을 감안하면 이를 계기로 수익성이 제고될 여지가 있다.
마지막으로는 지배구조 측면에서의 매력이다. 일반적인 국내 상장사에서 상속의 필요성이 있는 지배주주들은 상속세 때문에 오히려 회사의 주가가 낮아지기를 바라게 되고, 금융소득종합과세 때문에 회사에 현금이 쌓여도 배당은 하지 않기를 원하게 된다.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요인이다. 반면 은행의 경우 이른바 '오너'라 불리는 지배주주가 존재하지 않고, 지분이 국내외 기관투자자 위주로 넓게 분산돼있다. 따라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간의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좋은 방안이 있다면 주주로서 경영진과 같이 소통해 볼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자기자본이익률(ROE)이 평균적으로 약 10%, PER이 약 3배인 상황에서 계속해서 벌어들이는 돈의 대부분을 대출 성장에 재투자해왔다(주주환원율은 2021년 기준 평균 24%에 불과, 해외은행 평균 64% 대비 저조). 그런데 이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예를 들면 어떤 해에 당기순이익 1조원을 벌어서 전액 대출 성장에 재투자하게 되면 당기순이익은 1000억원 늘어나는데, PER이 3배이므로 시가총액은 3000억원만 증가하게 된다. 반대로 1조원을 배당을 하거나 자사주 매입소각을 하게 되면 전액이 그대로 주주가치로 전달된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저평가 상황에서는 은행들은 벌어들이는 돈을 대출 성장에 재투자 하기보다는 주주환원에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따라서 자본배치를 대출 성장에서 주주환원 위주로 바꾸는 의사결정을 통해 주주가치를 크게 향상시킬 수가 있다.
일반적인 상장회사였다면 이런 이야기를 꺼내도 별로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모든 의사결정을 사실상 이사회를 장악한 지배주주 마음대로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은행에서는 다르다. 주주가 분산되어 있는 지분구조상 주주들의 의견을 경청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번에 얼라인파트너스에서 우리나라 7개 상장 은행지주 전체에 주주서한을 보내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본배치정책을 변경해달라고 요청한 이유다. 여러 은행들이 이번 캠페인을 계기로 어느 은행이 진정으로 주주가치를 생각하는 은행인지에 대해서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지분구조의 우리나라 상장사라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2월 9일에 주주들을 위해서 가장 훌륭한 자본배치정책과 주주환원정책을 결의하고 발표할 곳이 어디일지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은행주 투자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가장 어두울 때가 동이 트기 직전이라고 한다. 분명 우리나라 은행 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에는 근거가 있다. 높은 금리 수준으로 이자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기업 및 가계로부터 연체율이 올라갈 수 있고, 부동산 시장 침체는 분명 대손비용 확대로 연결 수 있다. 또한 경제 활동이 둔화되며 다시 금리 인하기가 도래하면 순이자마진(NIM) 하락이 다시 올 수 있다. 그럼에도 투자자로서 필자는 지금처럼 부정적인 전망이 극에 달했을 때가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해야 될 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나라 은행들이 투자자들의 우려를 극복하고 든든한 저력을 과시하며 다시 투자자들의 큰 사랑을 받는, 제 가치를 인정받는 종목들로 거듭나는 그날이 곧 오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