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노조 부패 척결’에 나섰다. 노동개혁에서 중요하게 다루던 과제가 아니어서 좀 뜬금없긴 하다. 하지만 이왕 꺼낸 정책이니 제대로 하길 바란다. 역사적 뿌리가 생각보다 깊고 넓은 쟁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하버드대학아시아센터 연구시리즈를 집필한 모종린·배리 와인게스트는 한국의 발전사를 폭력과 특권의 교환이란 틀로 분석한다. 사회에는 폭력을 행사할 힘을 가진 사람들이 항상 존재한다. 그런데 이 폭력은 반드시 통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존속하지 못한다. 기본 메커니즘은 힘 있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유보하는 대가로 보통 사람이 갖지 못한 특권을 주는 것이다. 이것이 수천 년 문명의 기본 원리다. 물론 현대 민주주의는 특권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 다만 현실과 지향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다. 그리고 이 괴리가 커질 때마다 사회가 위기에 처한다. 즉 질서를 약화하는 폭력 행사, 특권을 남용하는 부패가 커지면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진다.
해방 직후 이승만 정부는 대통령의 개인적 인맥이 특권을 독점했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정부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상태였다. 현대적 국가는 박정희 정부에 이르러 모양을 갖췄다. 폭력을 독점한 군부 엘리트가 반공과 경제발전을 달성하기 위해 특권을 분배하는 질서를 만들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공공연하게 폭력을 독점하는 세력은 사라졌다. 대신 선거 정치를 이용해 정부를 포획하는 집단이 등장했다. 선거 자금을 제공하고 특권을 얻어내는 금권세력, 재벌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이후 대규모 파업과 시위를 통해 준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대기업·공공부문 노동조합도 폭력과 특권의 교환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다. 21세기 한국에서 물리적 폭력을 공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집단은 경찰과 노조뿐이다.
윤 대통령이 3대 부패로 정부, 기업, 노조의 부패를 지적한 것은 이런 점에서 틀리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에서 폭력과 특권의 교환이 집중된 곳은 이 셋이다. 부패가 집중된 곳도 당연히 이 셋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노조 부패는 다른 둘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종속적 주체여서 그렇다. 자본주의에서 노조는 명칭부터 수동태인 ‘피고용인’의 조합이다. 정부와 기업이 노동자를 고용하고 임금을 지급한다. 노조가 갖는 특권은 고용주의 특권 일부를 공유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노조의 부패 역시 독자적이라기보다는 기업 또는 정부와 ‘공유하는’ 부패에 가깝다. 예를 들면, 건설산업 노조에서 폭력과 부패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건설 현장 자체가 정경유착부터 다단계 하청까지 비리 백화점이라고 불릴 정도로 문제점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금과 지역 유지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로 유명한 버스나 택시 업종에서도 노조 부패는 역사가 길다. 법적 독점 또는 파산 불가라는 특권을 누리는 정부 기관에 있는 노조들, 원·하청 관계에서 특권을 누리는 대기업에서 조직된 노조들 역시 종종 큰 부패 스캔들에 휘말린다. 곳간이 커야 부패도 가능한 법이다.
부패 척결은 폭력과 특권이라는 한국 발전사의 뿌리를 개혁하는 일이다. 검찰 수사하듯 접근할 일이 아니다. 노·사·정이 공유하는 특권을 줄이기 위한 복합적 계획, 국민적 합의가 핵심이다. 노조 부패 척결은 노조만 두드려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참고로 정부가 제시하는 ‘노조 회계공시’ 제도는,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핵심에서는 다소 벗어난 대책으로 보인다. 대부분 부패는 회계 밖에서 이뤄진다. 노·사·정이 공유하는 특권도 전혀 건드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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