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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만에 첫 '은퇴 교황'…선종한 베네딕토 16세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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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96세 나이로 선종했다. 2013년 2월 건강 문제로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난지 약 10년 만이다.

31일 교황청은 베네딕토 16세가 바티칸시국에서 선종했다고 보도했다. 교황청 대변인은 "명예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오전 9시34분에 바티칸에서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독일 출신 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1927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요제프 알로이스 라칭거다. 추기경 시절엔 극적인 카리스마가 있는 종교 지도자보다는 명석하고 신념이 강한 학자 겸 행정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2005년 4월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제265대 교황직에 올랐다. 당시 그의 나이는 78세였다.

재임 당시엔 원칙적이고 간결한 신학적 판단을 바탕으로 전통적 교리를 강조했다. 이는 시대적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주의라는 비판도 받았다. 그는 이혼, 인간 복제, 여성 사제 서품, 동성애 등을 전통적 윤리에 반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해방신학과 종교 다원주의 등에도 반대했다.

재임 당시 카톨릭 부패 척결에도 노력했다.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이 여럿 나오자 사과와 함께 성직자 파면 등 조치를 내놨다. 그가 재임한 기간 파면된 성직자는 400명이 넘는다. 그러나 그가 독일 뮌헨 대교구장을 지낸 1977~1982년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2월 "재임 기간 여러 곳에서 발생한 학대와 오류에 대해 고통을 느낀다"며 사과했다.

사임 직전 해인 2012년엔 수행비서이자 집사로 지낸 파올로 가브리엘레가 베네딕토 16세의 서한을 비롯한 교황청 기밀 문서 여럿을 이탈리아 기자에게 유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전임인 요한 바오로 2세나 후임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달리 한국을 방문하진 않았다. 재임 기간 교황청을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 2006년에는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고(故) 정진석 대주교를 추기경에 임명했다.

2007년에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카톨릭 신도들에게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2008년 경기 이천 화재 참사 때에는 카톨릭 수원교구장 앞으로 위로 전문을 전달했다.
600년만에 자진 사임
베네딕토 16세는 2013년 2월 스스로 교황 자리에서 물러났다. 교황이 선종할 때까지 업무를 하는 것이 가톨릭의 오랜 전통이었던 것에 비하면 매우 이례적인 결단이었다. 당시 베네딕토 16세는 "고령으로 나의 능력이 교황 직무를 수행하기에 적합치 않다"고 밝혔다.

외신 등에 따르면 교황이 생전에 자진 사임한 것은 1415년 교황청이 프랑스 아비뇽으로 이전한 당시 교황이 세 명 나오자 그레고리오 12세가 분열을 막는다는 취지로 물러난 이후 598년 만의 일이다.

반면 한국천주교 주교회는 1294년 제192대 교황이었던 첼레스티노 5세가 나폴리 왕에게 교황청을 장악당하자 추기경과 상의한 끝에 물러난 것을 유일한 자진 사임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따지면 교황의 생전 자진 퇴위는 719년만의 일이 된다.

베네딕토 16세의 자진 퇴위 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재임한 과정 등을 다룬 이야기는 '두 교황'이라는 제목의 연극과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은퇴 이후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바티칸 시국 안에 있는 한 수도원에서 지내며 연구와 저술 활동에 몰두해왔다. 이달 들어선 건강 상태가 위중해졌다는 소식이 잇따랐다. 지난 28일엔 프란치스코 교황이 수요 일반 알현 말미에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위독하다며 신자들의 기도를 요청했다.
'명예 교황' 장례 의전은 "불분명"
교황청 안팎에선 전례가 없는 '명예 교황'의 장례 의전 절차를 두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BBC 등은 지난 30일 “카톨릭 교회는 교황이 선종한 경우 엄격한 의전을 시행하지만, 이 절차가 은퇴한 교황에게도 똑같이 적용될지는 불분명하다”고 보도했다.

교황청은 통상 교황이 선종하면 각국 정상에 비공식적으로 관련 사실을 알린다. 교황 직책을 대신하는 교황 궁무처장이 작은 은망치로 고인의 이마를 세 번 두드리고 이름을 부르면서 교황의 선종을 공식 확인하고, ‘어부의 반지’(초대 교황인 사도 베드로를 상징)로 불리는 교황의 인장 반지를 파기하는 절차도 있다.

이후에는 교황 궁무처장의 지휘하에 장례식을 거행한다. 새 교황을 뽑기 위한 추기경단 비밀회의 콘클라베도 준비하는 게 통상 절차다. 반면 이번엔 이같은 의전 중 상당수가 적용되지 않을 전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재임 중이라 '어부의 반지' 등을 파기할 이유가 없어서다.

BBC는 "교황이 선종할 경우 추기경단 단장이 주관한 장례식을 이번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주관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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