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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의 아픔·성차별을 예술로 승화한 '핀란드의 뭉크' [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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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을 그리는 건 별이 무수히 반짝이는 하늘을 그리는 것과 같다.”

‘핀란드의 뭉크’로 불리는 헬렌 쉐르벡(1862~1946). 그는 음울하고 어두우면서도 개성 넘치는 그림을 그렸다. 무엇보다 자화상을 많이 남겼다. 평생에 걸쳐 남겨놓은 작품 1000여 점 가운데 상당수가 자화상이다. 자화상에 쓰인 독특한 색감과 기법은 미술계에 강렬한 인상을 줬다. 안티 조키넨 감독의 영화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2021·사진)도 그의 자화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화는 이젤 위에 거울을 걸어두고 자기 얼굴을 바라보는 쉐르벡을 화면에 담으며 시작한다. 그는 한참 동안 거울을 본 뒤에야 캔버스에 붓칠을 시작한다. 자기 얼굴을 화폭에 담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누구보다 잘 아는 대상이지만, 또 그만큼 표현하기 어려운 게 자기 자신 아닐까. 쉐르벡은 배우 로라 비른이 연기했다.

영화에서는 50대의 쉐르벡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굴곡진 삶과 험난한 사랑을 보여준다. 하지만 쉐르벡의 삶은 50대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가 순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네 살 때 계단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평생 다리를 절어야 했다. 영국 화가와 약혼했지만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예비 시댁으로부터 파혼당했다.

가정 형편은 어려웠고 어머니는 가부장적인 사고 탓에 딸을 심하게 차별했다. 사회에서도 여성 화가라는 이유로 푸대접받았다. 전쟁과 가난을 소재로 삼은 이유가 뭐냐는 이야기까지 들어야 했다.

그래도 23세에 그린 자화상에는 당참과 자신감이 묻어난다.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창작의 나래를 마음껏 펼친 시기였다. 그는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장학생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었다. 화가로서 쉐르벡은 50대에 이르러 비로소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 쉰다섯 살에 개최한 첫 번째 개인전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새로운 사랑도 찾아왔다. 아마추어 화가이자 산림 관리사 에이나르 레우테르다. 하지만 레우테르는 쉐르벡의 돈으로 떠난 여행에서 돌아와 젊은 여성과 약혼해버린다. 쉐르벡은 사랑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며 더욱 성숙해진 것일까. 50대에 완성한 쉐르벡의 자화상은 다소 초췌하기는 해도 반짝이는 영혼을 담고 있다.

쉐르벡은 말로에 접어든 모습까지 화폭에 솔직하게 담았다.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여든두 살의 자화상에는 한쪽 눈동자가 제대로 그려져 있지 않았다. 마치 얼굴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처절하게 늙고 병든 모습을 표현했다.

자화상으로 자신의 삶 전체를 아우르며 표현하는 일. 그건 영화 속 대사처럼 별이 무수히 반짝이는 하늘을 통째로 담아내듯 어렵고도 값진 일이다. 어떤 순간에도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를 끈질기게 응시했기에 쉐르벡은 영원히 기억될 명작들을 남긴 게 아닐까.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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