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은 국민연금, 개인연금과 함께 근로자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핵심 제도다. 그러나 중도인출이나 이직에 따른 해지가 적지 않아 그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중도 인출된 퇴직연금 적립액은 2조6000억원으로 전체 적립액(255조원)의 1%를 넘었다. 주택 구입(46.3%)이나 전·월세(16.3%) 등 명목이 많았다. 이직에 따른 해지는 이보다 더 크다. 같은 해 이직을 이유로 해지된 적립액은 11조원으로 전체의 4.3%에 달했다.
미국 등 선진국보다 중도인출이나 해지가 쉽다는 게 주된 이유라는 분석이다. 선진국에서는 경제적 곤란 등에 국한해 중도인출이 허용되지만 우리나라에선 내집 마련, 전세금 충당, 대출금 상환 등 사유도 폭넓게 인정한다.
이직 과정에서 퇴직소득세만 납부하면 계좌 해지에도 별 제한이 없다. 평균 근속기간이 6.7년(2019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퇴직연금 수급연령(55세)에 도달하기도 전에 적립금이 상당 부분 누수될 수밖에 없다.
연금보다 일시금 수령 비중이 높다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55세 이상 퇴직급여 대상자의 일시금 수령 비율은 95.7%였다. 현행 퇴직 일시금의 실효세율이 4.4%에 불과해 이를 종합 과세(최고 세율 37%)하는 미국 등에 비해 연금 수령 유인이 약하다는 평가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55세까지는 중도인출과 이직 후 해지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퇴직연금 담보대출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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