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의 착한 기업들이 똑똑한 소비자들을 만나 폭풍 성장하고 있다. 경북의 사회적경제 기업들은 최근 몇 년 사이 MZ세대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똑똑한 소비 트렌드와 만나면서 기업과 제품, 서비스의 진정성을 인정받으며 견실한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미닝아웃, 바이콧, 가심비 소비, 돈쭐은 똑똑한 소비자들이 만든 소비트렌드의 변화다. 미닝아웃은 MZ 세대 중심의 ESG 소비자를 겨냥한 가격과 품질 이외의 요소를 중시하는 소비를 통해 개인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표출하는 것을 일컫는다.
바이콧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불매운동의 반대 개념으로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도를 뜻하는 가심비소비도 한몫했다. 착한 기업의 제품을 사줘서 돈으로 혼쭐 내주자는 적극적 돈쭐 구매 운동도 이들 착한 기업가들이 어려운 경기 속에서도 오히려 성장하는 힘이 되고 있다.
특히 소멸위기를 겪고 있는 척박한 농어촌 현장에서 기업가 정신과 착한 기업 이념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로 내수는 물론 수출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좋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면서도 실력과 아이디어로 승부하며 좋은 평판을 쌓아가고 있다.
◆경북 사회적기업, 취약계층 고용 53%, 여성 대표자 38%
경북의 사회적기업(예비사회적기업 포함)은 지난해 말 373개로 늘었다. 전체 상근 근로자 4004명 가운데 53.3%인 2134명을 취약계층에서 채용했다. 20·30세대 청년 근로자를 42.3% 채용하고 있고, 청년 대표자 비중이 18%에 달한다. 또 전체 근로자 가운데 여성 근로자 비중이 55.9%, 전체 대표 가운데 여성 대표자도 38.3%로 높다. 지방 소멸 위기를 극복하는데 중요한 여성의 유입과 경제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 상주의 알브이핀, 할머니와 함께 만드는 힙합 패션팔찌
상주시 성하동에 위치한 알브이핀(대표 신봉국)은 소셜브랜드 ‘마르코로호’를 운영하는 사회적기업이다. ‘할머니들께 행복한 일상을 선물한다’는 소셜미션을 갖고 있다.
알브이핀은 매듭 소품, 뜨개 소품, 봉제 소품 등 수공예 제품 생산을 통해 할머니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또 고객들이 선택한 영역에 기부하여, 누적 1억 5000만원을 기부하며, 성장하고 있는 특이한 기업이다. 대표상품인 매듭 팔찌와 매듭 반지는 유명 연예인들이 착용하며 알려지기 시작했고 소신 있는 소비(미닝아웃)를 추구하는 MZ세대 소비자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할머니들에게 행복한 일상을 선물합니다’ 알브이핀은 할머니들에게 돈을 버는 일자리(수단), 그 이상의 행복한 일상을 선물하는 산타 역할을 하고 있다. 2020년에는 과테말라의 여성 수공예 장인과 한국 양육 비혼모의 삶의 변화와 도약을 돕는 미닝 핸드메이드 주얼리 브랜드 ‘크래프트링크’를 인수하며 사회적 가치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알브이핀은 타지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신봉국 대표가 대한민국 노인 자살· 빈곤율의 현실과 노인복지시스템의 한계를 절감하고 교사직을 관둔 뒤 창업했다. ‘새로운 접근으로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목표를 갖고 그 뜻을 따른 여동생과 함께 상주로 귀촌해 고향 집의 작은 창고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알브이핀은 현재 청년 일자리 21개, 할머니일자리 36개를 창출하며 지역 소멸 위기에 대응하는 선도적 모델을 만들고 있다.
대구?경북 최초로 비콥(B-Corp)인증에 도전하고 있다. 비콥은 기업이 창출하는 긍정적인 사회적·환경적 성과와 책무성·투명성 등을 측정해 주는 인증이다. 미국 비영리단체 비랩(B-Lab)이 수여하고 있다.
◈포항노다지마을, 월급받는 농촌마을 만들어
포항시 남구 동해면 금광리에 자리 잡은 포항노다지마을(대표 김은래)는 100여명이 사는 농촌마을에서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소득을 창출하는 성공한 농촌마을의 모델을 일군 기업이다.
10년 전 해병대 장교(소령)이던 남편 신길호 씨와 간호장교(중령)로 복무하던 아내 김은래씨는 자신들이 일하던 포항에 귀농해 노다지마을을 설립했다. 고령화와 빈곤율이 높은 농촌의 현실을 접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노다지는 금빛을 뜻하는 마을 이름인 금광리에서 따왔다. 부부의 목표는 ‘월급 받는 농촌 마을’을 만드는 것이었다.
신 전 대표는 창업 후 전국 최초 민간인 출신 면장(전남 순천시 낙안면장)을 지내기도 했다. 노다지마을은 마을 주민들의 농지에서 ‘다 함께 농사짓는 효율적인 사회적농업’을 통해 쌀, 쪽파, 풋고추, 배추, 감자 등을 생산하고 있다. 또 이들 농산물을 활용해 가공식품인 통 가래떡, 치즈 떡, 청국장 등을 제조하고 있다.
떡 시리즈(통 가래떡, 치즈 떡 등)는 해썹(HACCP,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 기준) 인증을 받아 펀딩 때마다 완판되는 등 마을의 ‘노다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떡에 진심인 찐 팬들 덕분이다.
노다지마을은 주주의 약 70%가 금광리 마을주민이다. 2013년 설립 당시 자본금 2000만원으로 시작한 이후 매출은 점차 증가해 지난해 매출 9억과 2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설립 10년 만에 마을 경제의 버팀목이 되었다.
김은래 대표는 "결국엔 환경에 좋은 농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며 “수년 전부터 대게 껍질과 쌀뜨물로 비료를 만들고, 농업방재법, 유황합제 등 친환경 미생물 제제를 만들어 지역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일드림, 저탄소 과일 27톤베트남, 대만, 러시아 수출
경북 안동시 와룡면에서 친환경 자연농업으로 사과를 생산하는 10개 농가가 출자한 농업회사법인 과일드림(대표 황찬영)은 ‘국가 인증 저탄소 사과’를 생산하고 있다. 제초제·성장촉진제 대신 제초효과를 가진 풀을 키워 벌레를 쫓고 풋거름 재배방식으로 사과를 키우는 환경친화적 탄소저감농법을 사용한다.
과일드림의 친환경 저탄소 사과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생일선물로 보내져 ‘여왕의 사과’로도 알려져 있다.
해썹(HACCP) 인증과 우수농산물관리(GAP)인증을 받은 과일드림의 세척 사과와 배는 올해 베트남으로 16t, 대만으로 11t 수출했다. 러시아와 싱가포르, 홍콩 등에도 수출된다. 과일드림은 20개 지역 농가와 ‘저탄소 작목반’을 운영하며 친환경 농업을 확산하고 있다.
황찬영 대표는 ‘몽실언니’,‘강아지 똥’의 저자인 권정생 선생의 ‘어린이를 위한 복지’의 뜻을 이어 어린이들의 복지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권정생 선생은 집필하여 벌어들인 모든 인세를 아동 발전을 위해 남기고 돌아가셨다. 평생을 교회 종지기로 보내고, 방 한 칸 뿐인 안동의 흙집에서 살면서도 ‘어린이로 인해 생긴 것이니 그들에게 모두 돌려줘야 한다’라는 뜻을 남겼다.
과일드림은 농림축산식품부 초등돌봄교실 과일 간식 지원사업 기업으로 선정됐고, 생분해 플라스틱 컵 용기에 담긴 과일 간식을 전국 초등학교에 납품하고 있다.
지난달 말 중소벤처기업부 ESG 혁신성과 평가에서 농식품 ESG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안동반가, 6차산업 성공모델 만든 생강전문기업
안동시 북후면에 위치한 농업회사법인 안동반가는 안동의 특산품인 생강과 마(산약)를 활용한 생강 진액 편강 등 가공식품을 제조 및 판매하는 생강 전문 기업이자 이들 농산물을 활용해 카페와 체험 팜파티 플래너 양성 등 6차산업의 모델 기업이다.
대표제품은 100% 안동생강과 흑도라지로 만든 진짜 ‘흑도라지 생강 진액’ 이다. 물을 한 방울도 넣지 않고 착즙한 생강과 증숙한 흑도라지로 만든다. 안동 양반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비법과 정성이 담겨있다.
안동반가는 농촌형 카페인 ‘스페이스마’와 쿠킹클래스인 ‘키친마’와 함께 팜파티 전문가인 팜파티플래너 양성 교육을 통해 새로운 관광시장을 개척한 기업이다. ‘스페이스마’에서는 생강 라떼, 생강레몬차, 생강 비엔나커피, 생강커피라떼, 우엉차 등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또 키친마에서는 안동생강과 마를 이용한 쿠킹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마피자, 마 찜닭 외에 고추장· 가양주· 생강 라떼· 생강청· 편강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팜파티는 농가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홍보 판매하고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부상했다. 팜파티 활성화를 위해 귀농인과 농장주들을 상대로 팜파티 기회 등 교육을 해 팜파 티 플래너를 양성하고 있다. 안동반가는 유휴 농촌자원을 활용한 농촌 체험관광과 봉정사,도산서원 등 세계문화유산과 연계한 힐링 투어 프로그램 등 전통문화 관광 및 교육도 진행해 지역의 소셜문화관광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의성농산, 마늘의 고장서 탄생한 토종흑마늘
경북 의성군 비봉리의 의성농산영농조합법인(대표 유명진)은 지역의 농특산물인 마늘, 산수유, 도라지를 활용해 즙, 환, 가루 등 건강식품을 제조, 판매하는 농업회사법인이다.
1999년 지역의 농산물을 판매하던 작은 사업장으로 시작한 의성농산은 마늘 재배 농가의 소득을 증대시키기 위해 깐 흑마늘, 흑마늘 환, 꿀 흑마늘, 흑 도라지 진액, 산수유 진액 등 다양한 가공제품을 만들었다.
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좋은 값에 수매해 농가소득을 높이고 소비자들도 먹기 쉬운 즙이나 스틱 형태의 제품으로 변신시켰다. 10년 노하우로 완성한 흑마늘 숙성기술에 2019년 해썹(HACCP) 인증도 받았다. 파우치 형태의 의성흑마늘 진액뿐만 아니라 스틱 형태로도 만들어 선물용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의성은 조선 11대 중종 때부터 재배돼온 우리나라 토종 마늘인 ‘한지형 마늘’의 고장이다. 의성에서 생산되는 한지형 토종마늘은 국내 마늘 가운데 3.5%에 불과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는 농산물이다.
유명진 대표는 “마늘을 적절한 환경에서 숙성시키면 흑마늘이 되는데, 이때 수용성 유황 아미노산이 생성되며 폴리페놀 함량이 증가해 영양소가 배가 된다”며 “흑마늘은 특히 마늘 특유의 자극적이고 불쾌한 냄새가 없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의성농산은 근로자의 55%가 고령자로 지역 어르신들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서민프레시, 채소 해조류로 명품 부각 만들어
경북 예천군 호명면의 서민프레시농업회사법인(대표 김유진)은 서구화 돼가는 한국의 식탁을 지키기 위해 국내산 원재료로 전통음식인 부각을 제조하는 사회적기업이다.
부각은 순식물성 재료인 채소나 해조류에 여러 가지 양념으로 맛을 낸 찹쌀풀을 발라 말려두었다가 필요할 때 튀겨먹는 우리 전통음식이다. 서민프레시는 깨끗하고 위생적인 시설을 신축해 지난해 7월 이전했다. 자동화 시설을 도입해 10여종의 부각을 생산하고 있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B급 농산물인 고추, 사과, 비트, 우엉 등을 공판장 보다 높은 가격에 수매해 부각을 생산함으로써 농가 소득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김유진 대표는 20대 시절부터 어머니가 운영하던 반찬사업에 뛰어 들었지만 농사 경험이 없어 어려움을 겼었다. 김 대표는 원예육종학과에 편입해 작물의 재배방법, 작물의 주기, 병충해 등 농업의 전문 지식을 배우고 농민들과 소통하며 기업가로 자리를 잡았다. 가업을 잇기 위해 노력한지 9년, 이제는 온·오프라인 영업 마케팅 전문인 사위까지 사업에 가세했다.
김 대표는 '반찬'으로만 인식되던 부각을 '과자(스넥)'로 전환시켰다. 색소나 향료 첨가물을 일절 넣지 않고 자연의 맛을 담은 김부각, 미역부각, 감태부각, 모듬부각을 생산하고 있다. '2022 서울푸드 어워즈'에서 우수상품으로 선정됐다. 지난해에는 3000달러 상당의 고추, 호박, 사과 부각을 미국으로 수출하며 세계시장에 전통음식을 알리고 있다.
◈빅토리팜, 팜파티 운영하는 의성의 농업회사
의성군 안평면에서 청년 부부 농부가 운영하는 농업회사법인 빅토리팜(대표 손다은)은 농산물 온라인 직거래와 팜파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농업기업이다.
팜파티 참가자들은 파종 수확 체험 등을 경험할 수 있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20대 청년 부부는 2017년 두 딸과 함께 의성으로 귀농했다. 농민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돌아가지 않는 비합리적인 유통과정에 의문을 갖게 된 부부는 유통과정을 쏙 뺀 온라인 직거래로 재배한 농산물 판매를 시작했다.
직접 지은 농산물뿐 아니라 이웃의 농민들이 기른 농산물 판매도 도와주며 의성 농업공동체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화학공학이 전공인 남편 송승리 이사는 농사에 유체역학을 접목해 생산·품질·유통 등을 담당하고 신문방송이 전공인 손다은 대표는 디자인 기획 마케팅을 담당한다.
손 대표는 농촌의 풍경과 일상 이야기를 쓴 귀농일기를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복숭아 마늘 · 껍질 쉽게 까는 법 같은 ‘꿀팁’ 은 도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귀농일기를 읽던 팔로워들은 자연스럽게 농장의 고객이 됐다. 아내의 마케팅으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매출과 수익이 늘어났다.
빅토리팜의 대표제품인 ‘동결건조 다진 마늘’은 부부가 직접 농사지은 ‘한지형 의성 토종 마늘을’ 동결건조해 큐브와 분말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귀농 6년 차인 지난해 3억 5000만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위즈, 우리 역사와 전통 재해석한 디자인 우산·양산
안동시 북문동에 위치한 주식회사 위즈(대표 이홍실)는 우리나라의 국보 문양, 전통 문양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해 우산 겸용 양산을 디자인하고 제조하는 사회적기업이다. 독특한 디자인과 특수원단 제작 기술을 융합해 명품 양산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이홍실 위즈 대표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아름다움을 생활 속 예술로 만들겠다’라는 포부로 창업했다. 자체 브랜드인 ‘소옥’과 세컨드브랜드 ‘시에라리’를 론칭해 다양한 콘셉트의 양산을 생산하고 있다.
위즈는 1999년 안동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90세 생일 때 대사관을 통해 양산을 선물하며 ‘여왕양산’ 기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선물한 양산은 안동을 상징하는 국보 제121호 하회탈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하회 낭자’였다. 삼국유사 속 선덕여왕의 설화를 모티브로 한 ‘선덕여왕 우산’, 퇴계 이황이 좋아하던 매화와 스트리를 담은 ‘퇴계연가’를 비롯해 국보 문양과 전통 문양 양산을 통해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과 스토리를 제품에 담아내고 있다. 지난해 매출 24억원으로 전년보다 2배 으로 늘었다.
안동지역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전 직원이 청년인 ‘청년 기업’이다. 이홍실 대표는 “제품이 고가인데도 시장에서 인정받는 것은 프린팅한 원단을 사용하지 않고 양산 원단의 무늬를 직조로 짜거나 마이크로 원사를 2700번 꼬아 만든 웨이브 엠보싱 원단으로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오경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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