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놓는 것은 지난한 작업이다. 수많은 인력과 자본, 오랜 시간을 투입해 자연의 장애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의 상징인 브루클린브리지는 1870년 착공해 13년 뒤인 1883년 개통됐다. 이후 수많은 개보수 작업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각은 예전만큼 인간의 땀과 피를 요구하지 않는다. 인공지능(AI)이 설계하고 3차원(3D) 프린터가 제작한 교량이 일반화하고 있어서다.
기업에 클라우드 기반 3D 디자인 설계 소프트웨어와 디지털트윈 시스템을 공급하는 오토데스크는 교량 설계 등 건축 분야 디지털 대전환(DX) 트렌드를 선도하는 업체다. 이 회사는 클라우드 기반으로 3D 프린터를 건설 현장에 적극 도입했다.
오토데스크는 레바논의 설계 엔지니어링 업체인 다(Dar)와 협업해 5m 길이의 사람이 건널 수 있는 스마트 교량을 3D 프린터로 제작해 지난 9월 공개했다. 이 다리는 3D 프린터로 재활용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글리콜(PETG)과 유리 섬유를 겹겹이 쌓아가며 제작했다. 다리를 만들기 위해 비스듬한 방향으로 프린팅하는 방식을 택해 생산의 효율성을 높였다.
나뭇가지를 닮은 디자인은 제너레이티브 방식이 적용됐다. 하중, 재료, 공정, 제약조건 등을 입력하면 AI가 조건에 맞는 수천, 수만 개의 설계를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기술이다. 사용자는 조건에 맞는 최적의 설계를 선택만 하면 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다리에 부착된 센서가 교량의 상태를 관리자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이를 통해 관리자가 모니터링하고 유지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 교량이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위험한 지형으로 사람이 들어가지 않고도 원격에서 3D 프린터를 장착한 로봇이 교량을 제작하는 시대가 열릴 수 있다. 스리나스 조나르가다 오토데스크 설계 및 제조(D&M)전략 담당 부사장은 “하룻밤 사이에 제품 수요가 변화하는 세상에서 디지털 기반을 갖춰야 경쟁사보다 더 빠르게 남다른 제품을 생산해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DX로 공급망 조달, 마케팅, 판매, 배송 상황을 손쉽게 파악하고 AI 기반 설계와 디지털 트윈, 가상현실(VR) 설계 등으로 효율성을 높인다는 설명이다.
실리콘밸리의 테크기업들은 각 분야에서 DX를 이끌고 있다. 실시간 3D 콘텐츠 제작 및 운영 플랫폼을 제공하는 유니티는 산업현장에 디지털트윈을 공급하고 있다. 유니티는 현대자동차와 손잡고 싱가포르 글로벌혁신센터를 3D 메타버스 플랫폼에 그대로 구현한 디지털 가상공장 메타팩토리를 구축하고 있다. 이 회사는 캐나다 밴쿠버 국제공항 설계에 디지털트윈을 도입해 탑승 절차, 세관 검사 등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조건을 찾아냈다.
스티브 블룸 오토데스크 총괄 부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세계 최대 유리섬유 업체인 오웬스코닝은 다양한 형태의 2D(2차원) 및 3D 설계 모델을 하나로 표준화된 완전 디지털 모델링 환경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DX로 의사결정의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새너제이=서기열 특파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