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그린 꽤 많은 작품 가운데 영화로도 만들어진 단편소설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이야기는 여러 사람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다. 오기 렌이 폴 오스터에게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이야기를 잘 갈무리해 폴 오스터가 신문에 발표하자 웨인 왕이 읽고 ‘스모크’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 많은 사람이 즐겼기 때문이다.
단행본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는 웨인 왕의 서문, 단편소설, ‘스모크’ 제작 과정과 ‘스모크’ 시나리오가 실려 있다. ‘스모크’로 웨인 왕은 1995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았다. 1947년생인 폴 오스터는 ‘떠오르는 미국의 별’이라는 칭호를 받은 순수문학 작가로 대표작은 탐정 소설 형식으로 쓴 <뉴욕 3부작>이다. 유럽 문단, 특히 프랑스에서 주목받는 그의 작품은 2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다.
텅 빈 지갑을 남긴 도둑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나는 이 이야기를 오기 렌으로부터 들었다’로 시작한다. 작가인 나는 브루클린 다운타운에 있는 시가 가게의 오기와 알고 지낸 지 11년이 되었다. ‘뉴욕타임스’에서 ‘크리스마스 아침 자에 실릴 단편소설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자 오기에게 뭘 써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오기가 “점심을 사면 최고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제안한다.오기 렌은 “1972년 여름이었어”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열아홉 살쯤 된 아이가 가게에 들어와서 책들을 훔쳐 레인코트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오기가 소리를 지르자 그는 산토끼처럼 달아나버렸고 도망하다가 떨어뜨린 지갑만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돈이 한 푼도 없는 지갑에는 운전면허증과 사진 몇 장이 들어 있었다. 운전면허증에 ‘로버트 굿윈’이라는 이름과 주소가 있었지만 불쌍한 생각이 들어 신고하지 않았다.
지갑을 우편으로 보낼 생각이었던 오기는 미적대다가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선반 위의 지갑을 본 오기는 직접 돌려주기 위해 주소를 보며 집을 찾아 나섰다. 임대주택 단지를 빙빙 돌다 겨우 집을 찾았고 초인종을 누르자 한참 만에 발소리가 들렸다. 늙은 여자가 “로버트 너냐”라고 물으며 문을 열었다. 아흔 살쯤 돼 보이는 그녀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네가 올 줄 알았다 로버트. 네가 크리스마스 때는 에슬 할미를 잊지 않을 줄 알았다”라고 말하며 팔을 벌렸다. 오기는 자신도 모르게 “맞아요. 에슬 할머니. 크리스마스 날이라서 할머니를 뵈러 제가 돌아왔어요”라고 말하며 껴안았다. 할머니도 손자가 아니라는 걸 아는 듯했지만 기뻐하는 모습에 오기는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눈이 안 보이는 할머니 혼자 사는 집은 지저분했고 먹을 게 마땅치 않았다. 오기는 가게에 가서 닭요리, 야채수프, 감자샐러드, 초콜릿케이크 등을 한가득 사 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물을 때 ‘시가 가게에 일자리를 얻었고 곧 결혼할 예정’이라는 둥 할머니가 좋아하실 만한 대답을 했다. 할머니는 “난 네가 뭐든지 잘해낼 줄 알고 있었다”며 미소 지었다.
할머니와 음식을 나눠 먹은 뒤 화장실에 갔을 때 최신형 카메라 상자 6~7대가 뜯지 않은 채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로버트가 훔쳐 와서 쌓아놓은 게 분명했다. 사진을 찍어본 적도, 남의 물건을 훔친 적도 없었던 오기는 그 가운데 하나를 들고나왔다. 할머니가 깰까 봐 조용히 설거지를 마친 오기는 로버트의 지갑을 테이블 위에 두고 그 집을 나왔다.
특별한 선물 같은 이야기
몇 달 후 오기가 크리스마스 때 가져온 카메라를 돌려주기 위해 임대주택을 찾았을 때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오기에게 에슬 할머니가 어디에 사는지 모른다고 했다.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오기 렌에게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 같다며 “할머니가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자네와 함께 보냈어. 할머니를 위해 좋은 일을 했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기 렌은 할머니에게 거짓말을 했고, 물건도 훔쳤다며 자책한다.
웨인 왕은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현실과 허구, 진실과 거짓말, 주는 것과 받는 것에 관한 복합적인 세계로 빠져들었다. 다 읽었을 무렵, 나는 가까운 사람에게서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