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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기 상장 거꾸로 한 메리츠…보고 있나, 카카오? [안재광의 대기만성'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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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식 가격이 유독 싸다고 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말이 있죠.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쪼개기 상장도 한 이유로 꼽힙니다.
잘 되는 사업을 자회사로 쪼개서
상장시키는 것을 말하는 데요.


LG에너지솔루션이 대표적이었죠.
원래 LG화학의 배터리 사업부였는데,
사업이 잘되니까 물적분할로
떼어 내서 100% 자회사로 만든 뒤에
상장해서 주식을 팔고
대규모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LG에너지솔루션과
그 모기업 LG화학이
이중으로 상장이 되기 때문에
시장에선 기업 가치를 디스카운트,
그러니까 할인해서 평가합니다.


LG화학 기존 주주들은
주가가 내려가서 피해를 보겠죠.
이런 이중상장, 쪼개기 상장은
해외 증시에선 찾아보기 힘들어서
한국 증시의 고질병으로 불리는데요.


그런데, 쪼개기 상장을
정확히 거꾸로 해서
주주들, 투자자들의
환호받은 기업이 있습니다.
이번 주제는 자회사들 합쳐서
비상장으로 만들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아닌,
코리아 프리미엄 받은
메리츠금융그룹 입니다.


메리츠금융그룹은
2022년 11월 21일
이례적인 발표를 합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메리츠금융지주가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
두 자회사 지분을 100% 취득하고,
이들 두 자회사를 상장 폐지 시키겠다.


지금은 메리츠금융지주가
메리츠화재 지분 59%,
메리츠증권 지분 53%를
각각 보유하고 있는데요.
나머지 지분도 시장에서 전부
거둬들이겠다고 한 겁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그 대가로
현금을 주는 대신에
주식을 새로 찍어서
주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지금은 메리츠금융지주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
세 개 회사가 상장되어 있는데,
지주사 하나만 남고
나머지 사업 회사들은 상장이 폐지됩니다.
또 화재, 증권 주주들은
지주사 주식을 갖게 됩니다.
100% 자회사가 되면
서류상은 별도 회사여도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들 세 회사가 하나가 되는 거예요.


이런 결정을 왜 했냐면,
우선 주주가치가 올라갑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이유 중에
이중상장 문제가 있다고 했잖아요.
메리츠금융도 모기업과 자회사가
같이 상장되어 있으니까
당연히 디스카운트가 있습니다.
그런데 모회사만 상장을 유지한 채
나머지 자회사들을 비상장으로 하면
디스카운트가 없어지겠죠.
자연히 주가도 오를 겁니다.
주주 친화적인 결정이죠.


실제로 주가가 올랐습니다.
그것도 엄청 많이요.
합쳐서 비상장으로 가겠다
이런 발표가 나온 직후인 11월 22일
메리츠금융지주, 화재, 증권
세 회사 모두가 가격제한폭인
30%씩 폭등했습니다.
쪼개기 상장은 증시에서 최대 악재로
받아들여지곤 하는데요,
반대로 합치기 비상장은 최대 호재가
된 것입니다.

합치기 비상장을 한 또 다른 이유로
회사 측은 자본 배분의 효율성을
꼽았습니다.
이게 뭔 소리냐면,
세 회사가 한 몸처럼 움직이니까
투자 결정을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예컨대 메리츠화재가 번 돈을
메리츠증권이 쓸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합니다.
기존에도 할 수는 있었는데,
금융 당국 승인받고
이사회, 주주총회를
세 회사 모두에서 열어야 해서
최소 6개월, 길면 1년도 걸립니다.
이걸 단번에 할 수 있게 바꾼 거죠.


또 내부적으로 소통도 쉬워지죠.
금융사들은 컴플라이언스라고 해서
같은 계열사라고 해도
자유롭게 소통을 못 하거든요.
고객 돈으로 대주주나, 계열사 좋은 일만
시켜줄 여지가 있어서
제도적으로 막아 놓은 건데요.
100% 자회사 형태가 되면
컴플라이언스가 훨씬 느슨해집니다.


이렇게 보면 합치기 비상장은
장점이 많은 것 같은데
왜 다른 회사들은 이렇게 하지 않냐면
대주주의 지배력이 약화하기 때문입니다.


LG화학의 경우에 모기업이
LG그룹 지주사인 (주)LG 인데요,
지분이 30% 정도 합니다.
만약 쪼개기 상장하지 않고,
LG화학에 배터리 사업을
그대로 둔 채로 자본조달에 나섰다고
생각을 해볼게요.


LG화학은 주식을 추가로 발행해야 하겠죠.
그럼 문제가 (주)LG 지분이 떨어져요.
주식을 10% 더 발행하면,
지분이 27%로 낮아집니다.
50% 더 발행하면 지분은 20%가 됩니다.


그런데 쪼개기 상장하면
(주)LG 보유 지분 30%는 그대로 있고,
LG화학이 밑에 LG에너지솔루션이란
100% 손자 회사가 하나 더 생깁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해서
주식을 더 찍어도 지분 희석은
크지 않습니다.
원래 100% 가지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보유지분은 현재 80%를 넘습니다.


쪼개기 상장은 그러니까
대주주가 지분을 유지하고
대규모 자금도 마련하기 위한
일종의 꼼수인 셈입니다.
회사 내부의 사업부를 상장 시켜
현금 인출기처럼 쓰려는 목적이에요.
그런데 메리츠금융이 쪼개기 상장과
정확히 반대로 했기 때문에
대주주 그러니까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의
지배력은 약화가 될 겁니다.


조정호 회장의 메리츠금융지주
지분은 현재 75.8%인데요,
합치기 비상장을 마무리하면
지분이 45.9%로 확 줄어듭니다.
총수의 지배력 약화를 감수한
결정이란 것을 알 수 있죠.

그래서 진의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어요.
최대주주가 자기 지분 손해를
감수할 만큼 뭔가 급박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 하는 겁니다.


이런 의심을 하는 것은
메리츠가 오너 갑질로 유명한
한진 그룹에서 분리된 회사라
더 그럴 수 있습니다.
조정호 회장의 큰형이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고,
이들의 아버지가 한진의 창업주
조중훈 회장입니다.


그래서 굳이 찾아낸 것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인데요.
PF 대출이라고도 하죠.
메리츠증권이 대규모
부동산 사업을 하는 데
돈을 많이 빌려줬는데요.
그런데 부동산 경기가 확 꺾여서
PF 대출 빌려준 것을 못 받을 가능성,
부실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부실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서
미리 회사를 합쳐 놓은 뒤에
메리츠증권이 메리츠화재 돈을
가져다 쓰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부 있습니다.
개연성이 있어 보이기는 하죠.
하지만 사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100% 자회사로 만드는
이런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선
최소 1~2년 전에 논의가 됐을 겁니다.
주주 간 이해 충돌을 적게 하려면
주가와 회사 실적이 어느 정도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서너 달 안에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부동산 경기는
최근 몇 달 새 갑자기 얼어붙었죠.


작년 말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미분양 나고
집값이 폭락한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았죠.
또 부동산 경기가 꺾일 줄 미리 알았다면
PF 대출 자체를 줄였을 겁니다.


또 다른 의구심은 상속인데요,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인데.
조정호 회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을 한 상태입니다.


만약 맘이 바뀌어서 물려준다 해도,
지금처럼 지분이 낮아지면
오히려 더 불리하죠.
한국에선 대주주가 지분을 증여할 때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하기 때문에
쪼개기 상장해도 모자랄 판입니다.


사실 조정호 회장은 꽤 오래전부터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한 인물입니다.
그동안 경영 스타일만 보면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에
굉장히 충실합니다.


우선 경영을 전문 경영자에게
거의 다 위임했고,
본인은 최소한의 의사결정만 하고 있습니다.

메리츠화재는 김용범 부회장이
메리츠증권은 최희문 부회장이
각각 최고경영자인데요
김용범 부회장은 2015년부터,
최희문 부회장은 2010년부터
회사를 이끌어 오고 있습니다.
한 번 사람을 쓰면 10년 넘게
믿고 맡기는 게 조정호 회장의
스타일 입니다.


또 이익 많이 나면 자사주를 꾸준히 매입해서
소각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주식 수가 감소해서
주당 순이익이 늘고 주주 이익도 증가합니다.
또 순이익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배당으로 주주들에게 돌려줬습니다.


미국에선 상장사의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률 확대가 흔한 일인데요,
한국에선 최근에서야 확산하고 있습니다.
돈 벌면 자사주 사고 배당하는 대신,
사업을 확장하고 회사를 키우는 게
경영자의 미덕처럼 생각이 됐거든요.


또 주가가 오르면 자녀에게 승계하는데
불리하니까 안 오르길 바랐던 것도 있었죠.
조정호 회장은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일찍부터 주식을 1주 갖고 있든,
100만주를 갖고 있든 주당 누릴수 있는
권리와 이득은 동일해야 한다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최근에 메리츠자산운용의
존 리 대표가 차명투자 의혹으로
사임을 했는데요,
메리츠금융은 곧바로 메리츠자산운용을
매각하기로 했습니다.
금융업은 신뢰가 바탕인데,


신뢰를 잃었으니 사업을 유지할
명분이 없다고 본 것이죠.
이것도 조정호 회장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단면 같습니다.


최근 5년간 코스피 지수 수익률은
마이너스 약 2%에 불과했습니다.
5년 동안 한국 주식 들고 있어 봐야,
평균 2% 손실 났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미국 S&P500 지수는 같은 기간
약 53% 상승했고,
나스닥 지수는 162% 급등했습니다.
최근 주가가 많이 내렸는데도 이래요.


미국이라 그런가 해서
시야를 넓혀서 봤는데요.
일본 닛케이 지수 수익률은 22%,
독일 닥스 지수는 10%였습니다.
이 기간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평균 2.3%로 이들 나라보다
높았는데 주가는 훨씬 부진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한국 상장사들이 주식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쪼개기 상장 같은 행위로
기존 투자자, 주주들의 가치를 희생시킨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메리츠금융그룹과
조정호 회장의 이번 결단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주주가치 높이기 나선 메리츠금융그룹
한국의 선도적인 금융사로 올라설 지
눈여겨 보겠어!

기획 한경코리아마켓
총괄 조성근 부국장
진행 안재광 기자
편집 박지혜·김윤화 PD
촬영 김윤화·박지혜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제작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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