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코로나19 이후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허용되면서 병원 예약 등을 포함한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30개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벤처투자 혹한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들 비대면 진료 플랫폼도 '옥석 가리기'가 진행될 전망입니다. 현행 의료법상 의료 알선 수수료를 받을 수 없고, 수익화 모델을 찾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후발 주자로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 뛰어든 룰루메딕의 김영웅 대표를 최근 한경 긱스(Geeks)가 만나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돈 버는 방법을 들어봤습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환자와 의사를 연결하는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 관건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다. 현행 의료법상 의료 알선 수수료를 받는 것은 불법이다.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병원이 아닌 상법상 일반 회사가 의료 정보를 데이터화해 활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신생 비대면 진료 플랫폼 룰루메딕의 김영웅 대표(사진)는 2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속 알맹이는 없다"며 "돈 버는 수익모델을 만드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출이 나오기는 어려운 구조이지만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거래액 자체는 크기 때문에 3, 4위권 플랫폼 정도가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경쟁이 격화된 상황에서 룰루메딕은 이용자 트래픽을 올리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쏟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매출이 발생하는 사업모델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해외 비대면 진료 △데이터 기반형 커머스 △기업대상 서비스형 소프트웨어(B2B SaaS)를 핵심 비즈니스모델로 삼고 있다. 그는 "헬스케어도 금융과 연결돼야 돈을 기꺼이 지불하려는 쪽이 생긴다"며 "수익모델의 핵심은 금융과 의료, 데이터를 연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 데이터로 어떻게 돈을 벌까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이용하는 환자와 의료진이 증가할수록 수많은 데이터가 오간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활용하고 수익화할지에 대해 답을 내놓은 플랫폼은 아직 없다. 룰루메딕은 데이터 수익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김 대표는 "민감한 의료 데이터를 수집할 생각은 아예 없다"며 "플랫폼이 이걸 하겠다고 하는 건 '규제 불구덩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의료데이터 수집은 병원이 할 영역"이라며 "플랫폼은 병원에서 합법적으로 나온 데이터 결괏값만 가지고 비즈니스를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룰루메딕은 보험 데이터 전문가들이 만들 플랫폼이다. 그는 "보험금융-의료-데이터의 연결을 실증한 사업모델을 갖고 비대면 진료 시장에 진입한 점이 다른 플랫폼과의 차별점"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를 비롯해 룰루메딕 구성원의 대부분이 국내 최초 크라우드 보험 플랫폼 '인바이유' 출신이다. 그는 "우리는 보험업법의 개인정보 규제안에서 보험 데이터를 가지고 사업모델을 만들어본 팀"이라며 "보험금융의 노하우를 의료분야에도 접목해 B2B SaaS '룰루TPA'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외부 투자금을 유치하지 않았음에도 ISO27001 등 국내외 정보인증 취득을 위해 전폭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헬스케어 플랫폼이 꽂힌 B2B 분야
김 대표는 비대면 진료와 시너지를 통해 수익을 발생할 수 있는 B2B 분야로 안전보건과 복지몰 영역을 찾았다. 룰루메딕은 창업 초부터 스마트 안전관리 플랫폼 1위 휴랜과 협업 구조를 만들었다. 다양한 산업재해를 사물인터넷(IoT)으로 관제하는 휴랜과의 제휴를 통해 사고가 발생할 경우 룰루메딕으로 연결, 의료대응을 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김 대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으로 건설 현장 노동자의 사망이나 부상뿐만 아니라 4일 이상 동일 질병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을 때 그 책임이 원청회사의 대표이사까지 돌아가게 된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으로 안전 현장뿐만 아니라 안전보건까지 모니터링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휴랜 플랫폼에서 건강 데이터를 분석해 위험성이 있는 근로자들은 현장에서 재배치하거나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상호소통 기능 구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룰루메딕은 또 월 1회 간소화된 형태의 비대면 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위험군은 스마트워치를 제공해 30분마다 심박수 등을 모니터링해 안전 보건 담당자에게 공유할 계획이다. 사고 발생 때 주변에 있는 근로자에게 응급 처치에 대한 요령을 알려주는 등 실시간 메시지도 주고받을 수 있다.
룰루메딕은 또 임직원 복지몰 1위인 현대이지웰과 데이터 기반형 커머스 사업을 위해 협업하고 있다. 현대이지웰 복지몰에선 마이페이지에서, 건강 상태를 알려주고 10년 치 건강검진자료를 기반으로 어디가 안 좋은지를 알려주고, 복지몰내 다양한 건강·기능식, 상품을 추천하는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 건강식, 보험상품, 코칭까지 연계해주는 협업모델이 가능하다.
K-닥터 수출하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
국내에선 의료 알선 수수료가 불법이기 때문에 룰루메딕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지난 9월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하고 베트남에서 비대면진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베트남 호찌민에 거주하는 13만명의 한인이 대상이다.룰루메딕이 협력하는 인천 나은병원 등 국내 종합병원 의료진이 1차 비대면으로 진료하면, 그 결과를 전달받은 베트남 현지 의사가 처방전을 제휴 약국에 보내고, 배달기사가 조제된 약을 환자의 집 앞으로 당일 배송하는 시스템이다. 비대면 진료부터 약 배송까지 모든 과정이 한 번의 결제로 가능하다. 룰루메딕은 베트남에서 12개 약국 체인을 운영하는 조아제약과도 협업하고 있다.
김 대표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이익준, 채송화 의사처럼 'K-닥터'가 K팝, K드라마, K푸드를 잇는 '셀링 포인트'가 될 것"이라며 "룰루메딕은 국경 간 의사 배상 책임 문제를 보험상품으로 풀어서 K 닥터를 수출하는 비대면 진료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룰루메딕의 강점은 건강검진 기록 분석 기술력이다. 건강검진 결과를 얼마나 잘 분석해 개인 맞춤형 건강 리포트를 제시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그는 "경쟁사들이 설문조사나 문진에 기초한 단순한 리포트를 제공하고 있는데 우리는 대기업 주재원의 건강검진 데이터를 가져와 생체나이법을 기반으로 면밀하게 분석해 리포트를 만들어준다"고 강조했다.
카카오에서 다시 나와 재창업
룰루메딕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바이유는 3대 재보험사 협상 라이선스를 보유한 엘케이엠에스리미티드(LKMS)가 만든 한국 최초 크라우드 보험 플랫폼 회사다. 당시 LKMS 대표이사였던 김영웅 대표는 2017년 말 인바이유 출범을 직접 이끌었다. 보험업 진출을 꾀하던 카카오페이가 2019년 5월 인바이유를 인수하면서 지난해 6월까지 2년여간 김 대표는 카카오페이 자회사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카카오페이에 인수된 인바이유팀은 플랫폼 이용자에 최적화된 전동킥보드 등 퍼스널 모빌리티용 미니보험을 만들었다. 카오오페이의 보험업 인가가 지연되면서 기대한 만큼 사업화 투자가 이뤄지지 않자, 김 대표는 지난해 6월 카카오를 나와 인바이유의 '데이터 금융' 기술을 바탕으로 다시 창업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인바이유 때부터 함께 했던 동료들이 차례로 룰루메딕 창업에 합류했다. 현재 룰루메딕의 경영진 대부분이 1970년대생으로 40대 중반에서 50대다. 김 대표는 "지금 40대 후반인데 앞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5~10년 남짓"이라며 "서로 믿는 사람들끼리 사고 한번 쳐보자고 모였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인바이유 지분 매각 대금으로 직원들 월급을 댔다. 주택담보대출까지 끌어다 사업 자금으로 썼을 정도로, '배수의 진'을 쳤다. 투자금이 마르면 사업을 접는 90년대생 요즘 창업가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지난해 베트남에서 수개월째 협력 병원을 못 찾았을 땐 '우리가 가는 길이 맞느냐'란 가벼운 질문에도 참 먹먹했어요. 1년 4개월간 공유 오피스 생활을 끝내고 지난 9월 강남에 100평짜리 사무실로 이사를 왔을 때 그동안 고생했던 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시작부터 B2B 수익화 모델을 겨냥한 룰루메딕은 재무적 투자자 대신 전략적 투자(SI) 유치를 통해 성장전략을 그리고 있다. 룰루메딕은 내년초 재무적 투자자로부터 첫 투자유치를 받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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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한 가지 더
코로나19 이후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허용된 가운데 의사협회와 약사협회 등 관련 직능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혀 비대면 진료의 법적 뒷받침을 마련하기 위한 국회 법안 처리는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하지만, 벤처투자 업계에선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이달 6일 나만의 닥터 운영사인 메라키플레이스는 62억원 규모의 프리 A 투자유치를 마무리했다. 굿닥은 지난 11월 말 반도체 전자장비 제조업체 원익홀딩스에 인수됐다. 원익홀딩스는 지난달 28일 굿닥의 모회사인 케어랩스의 지분 23.27%를 약 647억원에 인수했다. 닥터나우는 지난 6월 400억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금을 유치하며 누적 투자금 520억원을 돌파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엠디톡을 운영하는 엠디스퀘어도 지난 8월 초 25억원 규모의 프리 A 투자를 유치했다. 솔닥도 7월 기업가치 400억원을 인정받으면 포스코기술투자로부터 시리즈 A 투자금을 유치했다. 일동제약의 자회사 '후다닥'은 비대면 진료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 있다. '메듭' 운영사 메디르도 지난 3월 프리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하며 누적 투자금 30억원을 달성했다.
초개인화된 건강관리 솔루션 '커넥닥'을 제공하는 인포마이닝은 앞서 9월 55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