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 패밀리’는 영국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다. 지난 9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던 것을 보면 영국 왕실에 쏠린 관심을 체감할 수 있다. 특히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인들에게 거의 ‘붙박이 장롱’처럼 친근한 존재였다.
게다가 영국인들은 왕실이 주최하는 가든파티에 초대되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할 정도다. 일반 국민으로서는 어쩌면 반감을 가질 수도 있는 왕실에 이렇게나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 공의 특별한 ‘왕실 마케팅’이 있었다.
필립 공을 이르는 언론의 수많은 묘사 중, 가장 정확하게 그의 역할을 보여 주는 호칭은 바로 ‘왕실 회사의 총무부장(general manager of The Firm)’이다. ‘The Firm’은 ‘The Institution’이라는 단어와 함께 영국에서는 왕실을 칭하는 별칭이다.
결혼 후, 필립 공은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요청하지도 않은 일을 자신이 스스로 찾아서 했다. 제일 먼저 외부 일로 바쁜 여왕을 대신해 왕실 내의 모든 살림을 관장했다. 사실상 주부의 역할이었다.
우선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던 왕실 재산 관리와 지출을 틀어잡았다. 그는 왕실의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철저히 장악했는데, 왕궁 내의 정원에 무엇을 심는지까지 필립 공의 결재를 받아야 할 정도였다.
필립 공은 변하는 시대에도 왕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민들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1953년, 필립 공의 주장으로 여왕의 대관식 생중계가 이루어졌다.
당시 왕실 중신들은 왕실 행사를 그런 식으로 일일이 세상에 알리면 신비감이 떨어져 왕실 권위에 금이 간다고 했다. 윈스턴 처칠 총리도 엄숙해야 할 대관식이 극장 공연처럼 된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필립 공은 왕실의 존재는 왕족이 국민들의 가시권 내에 있어야지 괴리되어 존재하면 안 된다(It couldn’t be remote; it had to bevisible)고 했다. 또 왕실이 왕실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타성에 젖어 있는 왕실 측근들을 설득했다.
이런 맥락에서 1957년 성탄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영국 군주로서는 처음으로 TV를 통해 영연방 국민들을 대상으로 성탄 축하 연설을 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여왕이 지방이나 외국을 방문할 때, 늘어선 인파들과 악수 및 담소를 나누고 그들이 들고 온 꽃다발을 직접 받기도 하는 관례도 필립 공이 도입했다.
1969년에는 영국 왕실 역사상 처음으로 왕실 생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다. 역시나 필립 공 주도하의 일이다. 카메라를 통해 왕궁의 내밀한 실내를 보여 주고, 여왕과 필립 공은 어떤 식탁에서 식사하고 왕족들이 같이 TV를 보는 거실은 어떤 모습인지까지 보여 주어 공전의 인기를 끌었다.
필립 공은 총무부장 별명에 걸맞게 모든 장면에 일일이 개입했다. 자신이 바비큐에서 소시지를 굽는 장면도 넣고, 왕실 가족들이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담소하고 심지어 논쟁하는 자연스러운 장면까지 넣게 했다.
이렇게 해서 필립 공은 어느 별의 이야기 같았던 왕실이라는 실체를 국민들 근처로 불러들이고 왕실이 ‘박물관 전시품(a museum piece)’이 되는 걸 막았다고 훗날 전기 작가는 표현했다.
필립 공의 ‘왕실 마케팅’으로 영국인들은 왕실이 자신들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고 더 친밀하게 느끼게 되었다. 영국 언론은 필립 공의 이런 노력과 시도가 왕실을 보호하여 결국 21세기까지 살아남게 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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