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내년 세계정세를 아우르는 키워드로 ‘퍼머크라이시스(perma-crisis·영구적 위기)’를 제시했다.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에 이은 경기 침체, 미·중 패권 경쟁 등으로 위기는 ‘상수’로 자리 잡고, 예측 불가능성은 ‘뉴노멀’이 됐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기존 주기적이고 간헐적이던 화이트스완(반복되는 위기) 시대가 가고 블랙스완(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예상하지 못한 위기), 회색코뿔소(개연성이 높고 파급력이 크지만 간과하는 위험) 등이 한데 뒤섞여 몰려오는 현실은 자명하다. 한국은 저성장과 저출산·고령화 등 내부적 잠재 위기도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밀려오는 위기 하나하나가 정치·경제·사회 분야에 충격과 피해를 주고, 때로는 시스템 붕괴마저 몰고 올 수 있는 파괴력이다.
이 같은 상시 위기 시대에는 예방보다 어떻게 대응 능력을 갖추느냐가 관건이다. 과감한 규제 혁파로 경제·사회 구조의 비효율을 개선하고 체질을 유연하게 바꾸는 동시에 기술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살려 성장 탄력을 높이는 게 급선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그동안 한국 경제의 핵심 동력 역할을 해온 수출은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위기의 보루 역할을 해야 할 재정마저 거덜 난 상태다. 국내외 전문 기관들은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낮춰 잡고 있다.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한 곳도 등장했다. 그런데 규제 개혁 작업은 속도를 잃고 있다. 노동 유연화의 핵심인 주 52시간제 개편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법인세 인하 방안이 표류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노동과 함께 한국 경제·사회 시스템을 위협하는 교육·연금 개혁도 좌초 위기다. 기득권이 신기술 세력과 갈등 전선을 형성하며 도전과 혁신의 싹을 잘라버리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이코노미스트 경고대로 위기는 상시화·영구화하고 있지만 위기 대응에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정치권과 기득권 세력은 울려대는 경고음에 귀를 막은 채 정쟁과 이해타산에 혈안이다. ‘위기인데 위기의식이 없는 것이야말로 진짜 위기’라는 지적을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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