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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테스트 땐 '대박'이었는데…본게임에선 '쪽박' 차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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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좋은 아이디어가, 좋은 정책이 쏟아져 나온다. 시범 프로그램 결과도 매우 긍정적이다. 그런데 막상 확대 적용하면 결과가 영 시원치 않다. 시범 프로그램 때 보였던 효과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예상치 못한 문제만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존 리스트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부 교수가 쓴 <스케일의 법칙>은 이렇게 아이디어와 정책이 ‘규모 확장(scale-up)’이란 허들을 넘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원인을 파헤친다. 저자는 실험경제학 분야의 대가다. 언제 노벨경제학상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경제학계의 거물로 꼽힌다.

이력도 독특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선임경제학자로 일했고,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우버와 리프트에서 수석경제학자를 지냈다. 3~5세 유아를 대상으로 한 실험적 유아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이 이야기들은 시험관이 있는 실험실이 아니라 실제 현실 세상인 살아있는 내 실험실에서 나온 규모 확장 과학의 증거물들”이라는 그의 말은 허풍이 아니다.

몇 년 전 우버는 미국 시애틀의 일부 사용자에게 금요일 오후에 쓸 수 있는 ‘5달러 할인 쿠폰’을 뿌렸다. 예상대로 쿠폰을 받은 사람들은 더 많이 우버를 이용했다. 늘어난 매출은 할인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대박을 터뜨린 것 같았다. 하지만 사용자를 늘려 확대 적용하자 더 이상 기대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도시 전체에 걸쳐 승차 공유 횟수가 줄었다. 쿠폰은 금요일 오후 수요를 크게 늘렸지만, 공급이 따라주지 못했다. 이는 요금 상승과 대기 시간 증가로 이어졌고 결국 전체 수요를 감소시켰다.

원인은 다르지만 이런 일은 셀 수 없이 벌어진다. 198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경찰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마약 예방 교육을 펼쳤다. 제복을 입은 경찰이 학교로 직접 가서 역할극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마약의 유혹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기 연구에서 효과가 입증된 듯 보였고 정부는 대규모 예산을 편성해 전국으로 프로그램을 확장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들인 노력에도 효과를 못 보고 실패로 끝났다.

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저자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로 크게 다섯 가지를 든다. 처음부터 효과가 없었는데 효과가 있었던 것처럼 잘못 판단할 수 있다. 표본을 잘못 뽑아 시범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통계 결과를 분석할 때 ‘소음’을 ‘신호’로 착각하는 경우다. 마약 예방 교육이 이런 사례였다.

두 번째는 자기 아이디어를 과대평가했을 때, 세 번째는 초기의 성공이 큰 규모에서는 재현될 수 없는 요소에 의지했을 때다. 미국에는 저소득층 유아의 집을 한 달에 두 번씩 방문해 부모의 자녀 교육 의지를 고취하는 ‘얼리 헤드 스타트’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처음 시작했을 때에 비해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큰 규모에선 가정 방문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 번째는 우버의 할인 쿠폰 사례처럼 의도하지 않은 파급효과가 나타날 때, 다섯 번째는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지 않아 애초에 규모 확장이 불가능할 때다. 예컨대 최고의 교사만을 채용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프로그램은 확장이 쉽지 않다. 처음 수십 명은 그런 인재를 쉽게 채용할 수 있지만, 수백 명 혹은 수천 명을 채용하려면 비용이 오히려 더 늘어난다.

저자는 규모 확장을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전략을 책의 절반을 할애해 소개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책에 담긴 여러 생생한 사례가 더욱 유익하게 다가온다. 2018년 리프트 최고경영자(CEO) 로건 그린이 충성 고객 확보 방안으로 ‘회원제 프로그램’을 떠올렸을 때 여기에 숨겨진 문제를 간파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연회비를 내면 리프트를 이용할 때마다 승차 요금을 할인해주는 프로그램인데, 정말 좋은 아이디어처럼 들리지 않는가. 하지만 당시 리프트 수석경제학자였던 저자는 반대했고, 실제 데이터로 이를 입증했다.

기업가, 정책 입안자라면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우버가 기본요금을 올렸는데 왜 운전자의 수입은 늘어나지 않았는지, 영국 유명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의 식당은 왜 점포 확장에 실패했는지 등의 사례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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