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장을 외우면서 자기 성찰의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예전 번역본의 ‘아프락사스’가 ‘압락사스’보다 훨씬 익숙하다면서.
<데미안>이 세계적인 고전이 된 까닭은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인간 내면의 혼란과 시대적 상황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열 살 때부터 청소년기를 거쳐 청년이 되기까지 때마다 화두를 던지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혹은 혼자서 수많은 과정을 이겨낸다.
헤르만 헤세는 1877년 태어나 1962년 세상을 떠났다. 목사의 아들인 헤세는 수도원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서점과 시계공장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자원했으나 부적격 판정으로 실전에는 참전하지 못했다. 대신 스위스에서 ‘억류자들을 위한’ 잡지를 22권이나 냈다.
사회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헤세의 소설은 자신이 겪은 역사적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지만 시대 자체를 소설의 주제로 삼지 않고 ‘집단 인간’이 아닌 ‘개인 인간’을 조명한 소설을 썼다. 그로 인해 오랜 기간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게 된 것이다.
데미안이 선물한 안전과 혼돈
유복한 집안에서 사랑받으며 자란 열 살의 싱클레어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사과를 훔쳤다고 거짓말했다가 동급생 크로머에게 협박당하고 조종당하게 된다. 데미안이 나타나면서 크로머로부터 벗어나지만 사고 자체가 흔들리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한다. ‘동생을 죽인 카인, 죄없이 죽임을 당한 아벨’에 갈등 없이 선과 악을 대입해온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강한 사람 카인이 ‘영웅적인 행위를 했을 수도 있다’는 견해를 밝힌 것이다.데미안은 또다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두 명의 강도 가운데 회개하지 않은 사나이를 ‘마지막 순간에 비겁하게 도망하지 않은 개성을 가진 당당한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수렁에 빠진 자신을 건져준 데미안이 기존의 생각을 완전히 흔드는 핵폭탄급 주제를 투하하고 유유히 사라진 후, 싱클레어는 스스로 많은 것들과 부딪치면서 혼돈의 청소년기를 치열하게 살아나간다. ‘학교에서는 지도자이자 굉장한 녀석으로, 대단히 과단성 있고 위트 있는 녀석으로 인정받았던 반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두려움에 가득 찬 영혼이 불안으로 퍼덕이고 있었다’라고 독백하면서.
떨어져 있지만 자신을 지배하는 데미안으로부터 어느 날 편지를 받고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 과제를 지닌 어떤 신성의 이름, 압락사스’를 알게 된다. 음악가 피스토리우스와 함께 압락사스에 대해 얘기하며 싱클레어는 ‘또래들의 기쁨과 생활을 같이하는 것이 잘 되지 않고, 자주 비난에 근심으로 자신을 소모’한다. 피스토리우스는 열여덟 살의 싱클레어에게 ‘스스로에 대한 존경을 간직하는 법’을 가르치며 ‘자네가 언젠가 나무랄 데 없이 정상적인 인간이 되어버렸을 때, 압락사스가 자네를 떠나. 그때는, 자신의 사상을 담아 끓일 새로운 냄비를 찾아 그가 자네를 떠나는 거라네’라고 말해준다.
친구를 구하는 싱클레어
어느 날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며 내적인 긴장으로 가슴속까지 싸늘해진 싱클레어. 야곱이 천사와 싸우면서 ‘나에게 축복을 내리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고 한 말을 떠올리며 그 그림이 온통 자신이 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 순간 이끌리듯 나가 동급생 크나우어를 구한다. 데미안이 자신을 구했듯이. 그 자리에서 싱클레어는 ‘이제 더 이상 내 꿈속에서만 살지 않고, 내 마음속에 소망의 상이 되어, 나 자신의 상승이 되어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마침내 피스토리우스를 능가하고 다시 만난 데미안과 한 몸이 된 듯 일치감을 느끼는 싱클레어를 통해 읽을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는 독자가 적지 않다.
<데미안>은 치열한 작품이다. 읽는 내내 ‘나는 지금 나를 위해 고민하고 있는가’를 묻게 된다. 그 과정에서 너무 침잠해 있거나, 외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데미안>을 읽지 않고 혼돈의 청소년기를 지나치면 나중에 스스로에게 미안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