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용인 등 경기 남부지역은 ‘골프 8학군’으로 불린다. 인근에 명문 골프장이 몰려 있어서다. 많은 골퍼는 그중에서도 화산CC를 으뜸으로 꼽는다. 접근성, 경관, 코스 난도, 잔디 관리, 회원 서비스 등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나온 말이 ‘북(北)일동, 남(南)화산’이다. 한강 북쪽에선 일동레이크GC를, 남쪽에선 화산CC를 최고로 친다는 얘기다.
직접 만난 화산CC는 소문 그대로였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한자 성어가 꼭 들어맞는 골프장이었다. 시그니처홀인 18번홀(파4)은 ‘빛나는 산’이란 뜻의 화산(華山)CC에서도 가장 찬란한 홀이다. ‘학이 날아드는 산(화학산·華鶴山)’과 선녀들이 목욕한 웅덩이가 있는 시궁산으로 둘러싸인 이 홀 티잉 구역에 서니, 이름과 꼭 어울리는 풍광을 지닌 골프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경치에 넋을 잃은 기자의 어깨를 정수련 화산CC 대표가 톡톡 쳤다. “주변 좀 그만 둘러보세요. 이제 정신 가다듬어야 합니다. 핸디캡 1번홀이거든요.”
“왜 이곳을 알아보지 못했느냐”
화산CC는 1996년 문을 열었다. 식품첨가물 업체인 보락그룹 오너 일가가 목장으로 쓰던 땅을 골프장으로 바꿨다. 27개 홀을 들일 수 있는 땅에 18개 홀만 넣었다. 1세대 골프장 설계가인 고(故) 임상하가 밑그림을 그렸고, 이후 안문환 설계가가 리모델링을 맡았다. 안 설계가는 화산CC를 맡은 뒤 ‘스타 설계가’가 돼 이후 제주 CJ클럽나인브릿지와 이스트밸리 설계를 담당했다.이 터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화산CC는 시공사와의 갈등으로 1년가량 공사가 중단됐는데, 당시 한 대기업이 경기 남부에 최고급 골프장 터를 찾고 있었다. 이곳도 둘러봤지만, 엉망으로 방치된 걸 본 담당자들은 매입 후보에 올리지도 않았다. 이후 화산CC가 완공되자 그 대기업 오너가 담당 직원들에게 “왜 화산CC 부지를 보고하지 않았느냐. 둘러보고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거냐”고 불호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 대기업은 결국 경기 남부가 아니라 다른 곳에 골프장을 마련했다.
화산CC는 ‘비즈니스 골프’의 메카로도 불린다. 친구 또는 가족 간 친목 도모를 위한 라운드보다는 사업 파트너들이 함께 찾는 비즈니스 수요가 훨씬 많아서다. 실제 회원의 상당수가 법인이고, 최근 몇 년 동안 거래된 회원권도 모두 법인이 사들였다고 한다. 정 대표는 “‘평생에 한 번은 방문해야 할 골프장’이란 명성을 얻은 덕분에 법인들의 회원권 매입 수요가 많다”며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화산CC에서 운동하자’고 하면 일이 더 잘 풀리는 모양”이라고 했다.
난도는 높은 편이다. 짧지 않은 길이(총 전장 6440m)에 공이 떨어질 만한 곳엔 어김없이 벙커나 해저드가 입을 벌리고 있다. 그린 빠르기는 평균 3.2m(스팀프미터 기준)에 달한다. 전략 없이 덤볐다가는 타수를 우수수 잃게 되는 골프장이다.
지금은 표준이 된 ‘원 그린’을 한국에 처음 도입한 골프장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한국 골프장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홀당 두 개의 그린을 만들었다. 그린 상태를 관리하기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안 쓰는 그린에 공이 올라가면 ‘드롭’을 해야 하는 등 매끄러운 진행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화산CC를 시작으로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일동레이크GC 등이 원그린을 도입하면서 한국 골프장의 기준도 바뀌었다.
“그린에서 딱 소리 나면 끝”
18번홀 티샷은 괜찮았다. 레이디 티(364m)에서 160m를 보냈으니, 남은 거리는 200m 정도. ‘3온-2퍼트’로 보기를 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핀은 해저드에 가까운 오른쪽에 꽂혀 있었다. 5번 유틸리티로 120m를 보낸 뒤 9번 아이언으로 온그린을 노렸다. 하지만 공 윗부분을 가격한 탓에 공은 그린을 넘어 왼쪽 뒤편 벙커로 빠졌다.고운 모래를 헤집고 나온 공은 그린에 올랐지만, 홀에서 20m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섰다. 화산CC의 그린이 워낙 크다 보니 그린 끄트막에 오르면 홀까지 너무 긴 거리가 남는다. 화산CC의 평균 그린 크기는 1000㎡(300여 평)에 달한다. 넉넉하게 보낸다는 생각으로 스트로크를 하니 ‘딱’ 소리가 났다. 순간 정 대표와 캐디가 동시에 “헉” 소리를 냈다. 나는 듯이 굴러간 공은 홀을 넘어 반대편 에지에 닿은 뒤에야 멈췄다. 다시 온그린 뒤 2퍼트. 양파였다.
화산CC 취재 뒤 만난 한 대기업 임원에게 이 얘기를 하자 껄껄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화산CC 그린에서는 ‘딱’ 소리가 나면 끝이에요. 그린이 워낙 빠르고 예민해 공을 살살 달래서 치지 않으면 그린에서만 2~3타를 잃기도 합니다.”
그 얘기를 듣자 골프 커뮤니티에서 본 화산CC 후기가 떠올랐다. “코스는 환상, 스코어는 환장.”
분화구가 7개 솟아있는 11번홀(파3)은 이 골프장의 또 다른 얼굴이다. ‘화산(火山) 홀’로 불리는 홀이다. 분화구에 공이 들어가면 1타 이상 잃을 걸 각오해야 한다.
화산CC 정회원은 400명이 채 안 된다. 티오프 간격은 8분. 성수기에도 하루 70팀 이상 받지 않는다. 웬만해선 밀리지 않는다.
용인=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