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장을 앞둔 전국 스키장의 시름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스키는 저출산, 고령화와 골프 등 인기 야외 스포츠의 부상으로 2010년대 이후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런 와중에 올해는 11월 이상고온으로 개장일이 미뤄지는 악재까지 겹쳤다. 영업 중단을 선언하고 올해 장사를 아예 포기하는 스키장이 등장했을 정도다.
강원 스키장 개장 줄연기
25일 레저업계에 따르면 강원 홍천의 스키장 비발디파크와 평창의 휘닉스평창은 원래 이날이었던 스키장 개장일을 연기했다. 용평리조트와 알펜시아리조트도 개장 시기를 늦추기로 했다.스키장들이 문을 열지 못하는 건 11월 들어 이상고온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눈이 내리지 않는 초겨울엔 인공눈을 만들어 슬로프를 운영해야 하는데, 날씨가 너무 따뜻해 아직 스키장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음주부터 전국 대부분 지역이 영하로 떨어질 전망이지만 스키장들은 한 차례 미룬 개장일에 맞춰 문을 열 수 있을지 아직 안심하지 못하고 있다. 비발디파크 관계자는 “다음달 3일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스키장은 통상 11월 중순부터 말 사이 영업을 시작해 이듬해 3월 초까지 운영한다. 운영 기간이 넉 달이 채 안 되기 때문에 한 주라도 개장이 미뤄지면 영업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는다.
올해 장사를 포기한 스키장도 나왔다. 올초 리프트 역주행 사고로 구설에 올랐던 경기 포천 베어스타운은 시설 점검 등을 이유로 지난달 말 영업을 잠정 중단했다.
스키 인구 3분의 1토막
날씨도 문제지만, 스키의 인기가 추세적으로 식는 게 스키장엔 더 큰 고민거리다. 스키 인구는 10여 년 전부터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11~2012년 겨울 686만 명에 달하던 전국 스키장 이용객은 2021~2022년 겨울 213만 명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최근 수년간은 2020년 창궐한 코로나19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야외활동 위축과 더불어 젊은 층 사이에서 스키 대신 골프와 테니스, 캠핑 등 다른 스포츠의 인기가 더 높아진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보다 근본적으로 저출산 고령화가 스키 인기 하락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있다. 격렬한 스포츠로 분류되는 스키는 주로 젊은 층에 인기가 많은데, 출산율 저하로 신규 유입되는 스키 인구가 줄었다는 얘기다. 강원 평창에 있는 한 스키장 관계자는 “과거에는 학교에서 단체로 스키장을 찾아 어렸을 때부터 스키에 취미를 붙이는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엔 스키캠프 자체가 거의 사라졌다”며 “주요 이용객인 3040세대마저 점차 다른 스포츠나 취미로 이탈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스키용품 시장도 고꾸라져
스키용품과 스키복 시장도 우울하긴 마찬가지다. 골프와 테니스 의류·용품 시장이 판매 호조를 이어가는 것과 달리 스키용품 시장은 고사 직전이다.한 e커머스 업체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24일까지 스키와 스노보드용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6% 감소했다. 백화점 스포츠 담당 바이어는 “스키용품 정규 매장은 4~5년 전 이미 퇴점했고, 겨울 시즌에 간간이 팝업 행사를 열지만 실적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스키장 운영 업체들의 실적도 악화일로다. 전북 무주에서 스키장을 운영하는 무주덕유산리조트는 지난해 전년 대비 11.6% 감소한 29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다. 영업적자는 179억원에 달했다. 그나마 골프장과 같이 영업하는 강원 태백 오투리조트 같은 곳이나 골프장에서 올린 수익으로 스키장의 적자를 메워 양호한 실적을 올리는 정도다.
업계에선 앞으로 수년간 스키장업계에 구조조정이 본격화해 일부 상위 사업자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경기 남양주에 있는 스타힐리조트는 지난해 6월 영업 부진과 적자 누적으로 폐업했다. 반면 비발디파크는 올해 시즌권을 판매한 지 2주일여 만에 판매 수량 1만 개를 돌파했다. 시즌권 매출은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 40억원을 넘어섰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