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대표 극우 정치인으로 알려진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옛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도가 그려진 수건을 걸쳤다가 이웃국가인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가 크게 반발했다고 22일(현지시간) 영국 BBC가 전했다.
헝가리와 그리스의 축구 경기가 열린 지난 20일 오르반 총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도가 그려진 응원 수건을 어깨에 두르고 헝가리 선수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지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기 전의 영토로, 현재 헝가리 영토보다 7배가 넘는 크기다. 현재 우크라이나·루마니아 등 일부 영토도 포함한다.
루마니아 외교부는 곧장 “루마니아와 헝가리가 약속과 다른, 어떠한 현상변경(revisionist)에 대한 표현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의했다. 부쿠레슈티 루마니아 주재 헝가리 대사를 불러 오르반 총리의 행동에 대한 단호한 반대의 목소리를 전했다.
우크라이나 역시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올레그 니콜레코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은 “오르반 총리의 행동이 용납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헝가리 대사를 키이우로 소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헝가리의 현상변경 사상은 우크라이나와 헝가리 양국 관계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유럽 정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루마니아에는 약 120만명의 헝가리인이, 우크라이나 서부에는 약 15만명이 살고 있다. 헝가리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오르반 총리의 행위 이전부터 헝가리는 이미 두 나라와 갈등을 빚고 있다.
이에 오르반 총리는 페이스북에 “헝가리인들이 살고 있는 모든 곳이 헝가리 팀”이라며 “축구는 정치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할 뿐”이라고 적었다.
친러시아 성향을 보여온 오르반 총리는 올해 4연임에 성공하며 12년이 넘는 장기 집권 중이다. 그는 반(反)이민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유럽의 도널드 트럼프’로 불리며, 언론 통제·성소수자 차별 등의 문제로 EU와 마찰을 빚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EU의 대러시아 제재안에도 줄곧 반대 입장을 보였다.
조영선 기자 cho0s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