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태풍 힌남노로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를 본 경북 포항지역에 100억원이 넘는 수재의연금이 모였지만 지원된 기부금은 45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해가 발생한 지역에 고루 성금을 나눠주도록 하는 현행법이 기부자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재난 구호·모금 전문기관인 전국재해구호협회는 태풍 힌남노로 피해를 본 12개 시·도, 5856가구에 지난 11일 국민 성금 61억5050만원을 전달했다. 사망자 유가족 위로금(1인당 1000만원) 및 부상자 치료비(250만~500만원), 주택 침수 피해 지원비(100만~500만원) 등이 지급됐다. 이 중 피해를 본 포항시민들에게 45억원가량이 지원됐다.
포항시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포항시민을 위해 모인 기부금이 100억원이 넘는데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만 지급됐기 때문이다. 재해구호법에 따르면 자연재해 피해를 지원하기 위한 기업 및 개인 기부자의 현금 기탁은 행안부가 지정한 민간단체인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방자치단체가 기탁 행사를 열 수는 있지만 돈은 협회 은행계좌로만 모금이 가능하다.
포항에 생산거점을 둔 국내 최대 양극재업체 에코프로그룹은 9월 포항시에 100억원을 기부했다. 당시 이동채 에코프로 회장은 “포항지역 시민과 기업 및 피해 현장에 써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포항시에 따르면 포항지역의 태풍 관련 재산 피해는 2조2511억원으로 추산된다. 포스코 영업손실 등 간접 피해는 제외한 규모다. 에코프로에 이어 대구은행(2억원) 포항공항공사(7000만원) 포항스틸러스(3000만원) 등 포항시를 위해 써 달라는 기업과 단체의 기부금 기탁이 잇달았다. 이 기부금은 포항시가 아닌 재해구호협회 계좌에 입금됐다.
협회는 특정 지역 피해 기부금을 구분하지 않고 연간 단위로 한꺼번에 기부금을 모은다. 기업이 특정 지역 및 사례를 위해 써 달라고 한 기부금일지라도 자연재해가 발생한 다른 지역에도 쓰인다. 포항시 관계자는 “기부자가 포항시민을 위해 써 달라고 분명히 밝혔음에도 일부만 지원하는 건 기부자 의사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이강덕 포항시장은 기부를 독려하면서도 의연금품을 현금 대신 생필품으로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생필품 기탁은 지자체 접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열린 국감에서 이철우 경북지사는 “에코프로가 통 크게 성금을 기부했는데 협회에서 이를 다 가져갔다”며 “지역을 위해 성금을 내고 싶어도 내지 못하는 곳도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협회 관계자는 “지역·사례별로 모이는 기부금 규모의 편차가 크다”며 “균등 지원 취지에 따라 동일한 형태의 자연재해를 겪은 피해자에게 편중·중복·누락 없이 균등하게 지원하고자 하는 취지”라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