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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의 친구는 누구인가 [고두현의 문화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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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땅은 얼마나 될까. 톨스토이는 단편 소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를 통해 인간 본성의 이면을 그렸다. 주인공 농부는 ‘아침에 출발해서 해 지기 전에 돌아올 때까지 표시한 땅을 모두 갖는’ 꿈에 부풀어 멀리, 더 멀리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돌아와서는 숨이 막혀 죽고 말았다. 결국 농부가 차지한 땅은 약 3아르신(가로·세로 약 2.2m)의 무덤뿐이었다.
"붕우(朋友)는 '두 날개와 양손'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친구는 얼마나 될까. 고대 철학자들은 숲속의 작은 집 방 안에 초대할 숫자만큼의 친구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했다. 중세 인문학자들도 그랬다. 현대에 와서는 과학적인 실험과 관찰을 통한 연구가 진행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게 영국 문화인류학자 로빈 던바의 연구 결과다. 그의 책은 <발칙한 진화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지만, 원제는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친구가 필요한가(How many friends does one person need)?’다.

‘던바의 법칙’에 따르면 한 사람이 사귀면서 믿고 호감을 갖는 친구의 수는 최대 150명에 불과하다. ‘던바의 수’ 150명은 평범한 개인이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다. 던바의 연구팀이 영국인을 상대로 크리스마스카드를 몇 명에게 보냈는지 조사한 결과 한 가족당 약 150명으로 나타났다. 수렵채집 시절의 부족 사회 인원이 평균 153명인 것과 비슷하다. 로마군의 기본 전투단위인 보병 중대 병력이 130명이었고, 현대의 중대 단위도 지원 병력을 합쳐 130~150명이다.

오늘날의 ‘트친’과 ‘페친’ 숫자는 많지만, 이들이 진짜 친구를 대체하기는 어렵다. 인간관계야말로 양의 크기보다 질의 깊이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던바는 “우리가 매우 곤란한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완전 절친’은 대략 3~5명”이라고 말한다. 그다음 ‘절친’은 15명, ‘좋은 친구’는 30명, ‘그냥 친구’는 150명이다. 이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있어도 이들은 ‘아는 사람’ 500명, ‘알 것도 같은 사람’ 1500명 정도로 구분된다.

라틴어에서 친구를 뜻하는 단어 아미쿠스(amicus·남자)와 아미카(amica·여자)는 모두 ‘사랑한다(amo)’에서 나온 말이다. 프랑스어 아미(ami), 이탈리아어 아미코(amico), 스페인어 아미고(amigo)도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영어 또한 다르지 않아서 프렌드(friend)의 옛 영어 ‘freond’는 ‘freon=사랑한다(to love)’의 현재분사형이다.

한자로 친구는 ‘가까이에서 오래 두고 본 사람’을 말한다. 친(親)은 가까이에서 본다, 구(舊)는 오래됐다는 뜻이다. 붕우(朋友)라는 한자에는 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벗 붕’(朋)은 조개를 끈으로 엮어 나란히 한 모양이나 새의 양 날개를 의미하고, ‘벗 우’(友)는 사람의 두 손을 뜻한다. 진정한 친구는 새의 두 날개와 사람의 양손처럼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얘기다.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
인디언들은 친구를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는데, 이 정도 친한 관계는 막역(莫逆)한 사이라고 한다. 한자로 막(莫)은 아니라는 의미이고 역(逆)은 거스른다는 뜻이다. 서로 너무나 잘 알아서 뜻을 거스를 일이 없으니, 마치 ‘네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네가 있다’는 노랫말만큼 가까운 관계다.

남다른 우정을 ‘지음(知音)’이라고도 한다. ‘백아절현(伯牙絃)’ 고사 속의 중국 춘추 시대 거문고 명인 백아(伯牙)와 그 소리를 기막히게 알아들은 친구 종자기(鍾子期)에서 나온 말이다. 종자기가 죽어 그 소리를 들을 사람이 없게 되자 백아가 낙심해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는데, 악기의 줄만 끊은 게 아니라 자기 애를 끊은 듯 슬픔이 배어나는 사연이다.

나이를 뛰어넘는 친구도 많다. 조선 중기 재상 이항복과 이덕형은 다섯 살이나 차이가 났지만 ‘오성과 한음’의 주인공으로 특별한 우정을 나눴다. 윤동주와 같은 방에서 지냈고 훗날 유고시집 원고까지 지켜낸 정병욱도 다섯 살 차이 절친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천금보다 친구를 얻는 게 더 어렵다고 했다. 추사 김정희가 ‘세한도’에 썼듯이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아는 것과 같다. 사랑과 미움 사이를 오가는 친구 관계도 많다. 친구가 잘되기를 바라고 성원하면서도 내심 자신이 뒤처지거나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런 애증(愛憎)은 진짜 미움이라기보다 선망이나 불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친구와 적을 구별하기 어려운 ‘프레너미(friend와 enemy의 합성어) 현상’까지 빚어진다.

어떻게 해야 진정한 친구를 얻을 수 있을까. 이란 영화감독 아바스 키아로스타미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고 물었던 것처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누구이며, 그 친구가 좋아하는 친구는 또 누구일까. 곰곰 생각하면,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는 서로 닮는다. 장점만 아니라 단점까지 닮는다.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면 친구부터 살펴보라는 게 동서고금의 진리다.
장단점까지 있는 그대로 비춰
그러고 보니 내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바로 나다. 친구는 나를 온전히 비추는 거울이다. 희로애락의 온갖 표정까지 다 비추는 호수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거울 이론’이랄까. 미국 시인 랠프 에머슨이 “한 친구를 가지는 유일한 방법은 한 친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런 우정은 ‘두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처럼 숭고하다.

베토벤에게 합창교향곡의 영감을 준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가 ‘환희의 송가’에서 노래한 것도 “한 친구의 친구가 되는/ 위대한 일을 이루어낸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않은가. 첫눈이 내린다는 절기 소설(小雪)을 지나며 ‘진실한 우정은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다’는 격언 또한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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