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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두통에도 "MRI 찍어달라"…年 2050회 '의료쇼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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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형 병원 의사 A씨는 최근 두통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해달라고 요구하자 더 이상 묻지도 않고 검사해줬다. 굳이 MRI 정밀검사까지 할 필요가 없는 환자였지만 거부하면 의료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A씨는 “검사 비용만 100만원에 달하는 MRI가 2018년 이른바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되기 전까지는 상상할 수조차 없던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병원도 MRI 검사를 많이 할수록 돈을 버는 구조이기 때문에 묻고 따지지도 않고 MRI 검사를 해주지만, 실제 MRI 검사를 할 필요가 있는 환자는 1%도 안 된다”며 “결국 건강보험 재정만 줄줄 새는 셈”이라고 했다.
1년에 2050번 ‘의료 쇼핑’한 사람도
당장 내년부터 만성 ‘적자 늪’에 빠질 것으로 예상되는 건강보험 재정난의 주원인 중 하나는 ‘과잉 의료’다.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의료비가 싸다 보니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고, 이 중 일부는 ‘의료 쇼핑’이란 말이 나올 만큼 과도하게 병원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2018년 이후 건강보험 적용 범위가 확대된 초음파와 MRI 진료비가 3년 만에 10배 규모로 커진 게 단적인 사례다.

초음파의 경우 2018년만 해도 진료비(건강보험+환자 부담액)가 1378억원에 불과했지만 작년엔 1조2537억원으로 불어났다. MRI 진료비도 이 기간 513억원에서 5939억원으로 뛰었다. 그만큼 이용 환자가 폭증한 것이다. 당초 초음파와 MRI는 건강보험 보장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2018년부터 초음파와 MRI가 부위에 따라 단계별로 건강보험 보장 대상에 포함되면서 관련 의료 이용이 급증했다.

특히 같은 증상에도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는 일부 환자의 의료 쇼핑이 건보 재정에 큰 부담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5월 국회 입법조사처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연간 150회 이상 외래진료를 받은 환자는 총 18만9224명으로 조사됐다. 이들에게 지급된 건강보험 부담액은 총 1조9604억원에 달했다. 통상 의료계에선 연간 외래진료 횟수가 150회를 넘는 환자를 과다 의료 이용자로 분류한다.

연간 500회 이상 병원을 찾은 환자도 지난해 532명이나 됐다. 주말을 포함해 하루 한 번 이상 병원을 방문한 것이다. 특히 한 40대 환자는 지난해 1년간 42개 병원을 돌아다니며 총 2050회의 외래진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보 보장, 가벼운 병은 줄여야”
건강보험 덕분에 웬만한 질병은 대학병원 치료를 받더라도 환자 부담이 크지 않아 가벼운 질병마저 동네 의원 대신 무조건 대형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충남 천안에서 동네 의원을 운영하는 B 의사는 “환자들이 상급 병원에서 검사받으려면 1차 의료기관의 진료의뢰서가 필요한데, 막무가내로 의뢰서를 써달라고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며 “거절하면 폭언과 함께 한바탕 난리가 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건강보험의 지출 구조를 가벼운 질환에 대해선 보장을 줄이되 고령화로 향후 급증할 중증 질환에 대해선 지원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8월 보고서를 통해 “경증(질환)의 과다 의료 이용에 대해선 진료비, 약제비의 본인 부담률을 높여 (의료 이용 빈도에 따른 비용 부담을) 차등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전에서 일하는 C의사는 “감기와 같이 치료제가 없는 바이러스성 경증 질환은 사실 병원에 올 필요가 없는데도 한국에선 병원비를 대부분 건보로 지원해준다”며 “건보 재정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경증 질환에 대한 국민의 부담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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