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패션’의 역사는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 수년간 이어진 호황기에 자신감에 부푼 패션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친환경 마케팅을 펼쳤다. 고가 드레스를 재활용한 뉴욕의 ‘이미테이션 오브 크라이스트’, 스위스 가방 브랜드 ‘프라이 탁’ 등 에코 패션이 유행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의 폭풍우 속에 소비자 머릿속에서 ‘친환경 패션’이라는 용어는 지워졌다. 대신 유니클로, 자라, H&M 등 ‘속도가 생명’인 고수익 패스트패션(SPA)이 득세했다. 인디텍스(자라를 생산하는 기업)와 패스트 리테일링(유니클로), H&M, 포에버21 등 SPA 기업의 시가총액이 전 세계 패션업계에서 상위 10위권 이내에 대거 포진한 시기도 이때다. SPA는 대량 생산과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좇는 기획력으로 사회·경제적 배경과 관계없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패션 민주화’를 이뤘다는 찬사를 받았다. 패션업계의 주류는 이들 차지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시기에 지속 가능 패션의 명맥이 끊긴 것은 아니다. SPA의 거센 공세에도 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했다. 이들이 다시 글로벌 패션 시장의 대세로 뜬 건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10~20대 소비자들이 환경과 건강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다. 패션업계에서는 2010년대 중반 웰빙 건강식의 등장이 맥도날드를 코너로 몰아붙였듯 친환경 패션이 SPA를 코너에 몰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에르메스와 루이비통 같은 콧대 높은 명품들조차 송아지 가죽을 사용하지 않는 핸드백을 내놓은 건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 근거다.
H&M도 매장에서 중고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기존 패션기업은 이런 트렌드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 환경친화적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생산과 재고 처리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이다. 국내에선 환경오염이 적은 제품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플리츠마마 같은 신생 패션기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친환경 패션이 모든 패션시장 전체를 싹쓸이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짝 유행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에 상당한 힘이 실리는 것도 사실이다. 소비자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입는 옷에 반영하는 ‘가치소비’ 트렌드가 대세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오늘날 패션은 한 사람의 가치를 드러내는 지표가 됐다”며 “친환경 의류로 자신의 지향점을 보여주려는 가치소비가 확산한 만큼 기업들도 친환경 트렌드를 거스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정철/이미경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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