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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 입고 버린 옷, 썩지 않는 쓰레기산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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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찾은 경기 고양시 식사동의 일명 ‘덤핑거리’. 이곳에는 매일 의류 수거함에 버려진 옷들이 모인다. 의류가 전체의 90%를 차지한다. 신발과 가방, 모자 등 패션 잡화 제품도 진열된다. 이곳에 모이는 중고 의류는 총 60t 규모. 덤핑거리 관계자는 “서울·수도권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버려진 의류가 몰려온다”고 말했다.

이 의류들은 속칭 ‘까대기’ 과정을 거친다. 한곳에 모인 의류 가운데 되팔 만한 옷은 걸러지고,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제품은 ㎏당 300~500원 가격으로 동남아시아 국가에 수출된다. 이곳의 빈티지월드에 근무하는 이모씨(38)는 “전국에서 팔리는 구제 제품의 도매시장 역할을 하기 때문에 상인들이 몰려든다”며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외국인 근로자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매일 버려지는 수백t의 옷

국내에서 버려지는 의류 폐기물은 연 8만t에 달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의류 폐기물의 양은 2018년 6만6000t에서 2020년 8만2000t으로 24.2% 늘어났다. 패션기업 공장에서 버려지는 폐섬유류까지 합치면 이 규모는 연 37만t으로 불어난다.

의류·섬유 폐기물은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유니클로’ ‘탑텐’ ‘자라’ 등 한 계절도 지나지 않아 버리는 패스트패션(SPA)이 인기를 끌면서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SPA 기업들은 변화하는 패션 트렌드에 따라 상품을 빠르게 생산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며 “1년에도 몇 번씩 새로운 스타일의 옷들이 나오니, 소비자도 의류를 빠르게 소비한 뒤 버리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패션기업과 일반인들이 버리는 의류폐기물은 두 가지로 나뉜다. 아직 쓸 만한 상품은 일산 덤핑거리 등에서 분류된 뒤 서울 동묘 구제시장 등에서 중고의류로 되팔린다. 이렇게 재활용되는 의류 비율은 전체의 12% 수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매립되거나 소각 처리된다. 최근에는 이런 의류들이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지역으로 상당량 수출된다.

한국의 헌 옷 수출량은 미국·중국·영국·독일 다음으로 많다. 전 세계 5위 수준이다. 대부분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된다. 의류를 재활용하지 않고 수출로 돌린다는 얘기다. 이렇게 수출된 낡은 의류들은 해당 국가에서도 소비되지 않아 의류 쓰레기로 산이 만들어지기도 할 정도다.
‘공공의 적’ 돼 버린 패션기업
옷을 버리는 데에서만 환경오염, 혹은 자원낭비가 발생하는 게 아니다.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 데에는 약 2700L의 물이 사용된다. 면화 재배를 위해서는 세계 사용량의 24%를 차지하는 양의 살충제가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양한 염료, 표백제 등은 수질을 오염시킨다, 의류 제조에 쓰인 폐수가 전 세계 폐수의 약 20%를 차지할 정도다. 옷을 만들거나 폐기하는 데 드는 탄소배출량은 세계 탄소 배출량의 10%에 이른다.

그런 만큼 패션기업들은 세계적으로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한 국내 패션기업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은 중국과 동남아 국가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어 지금까지는 비난을 피해왔다”며 “동남아 국가에서 오·폐수를 배출한다고 자국 환경오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글로벌 패션기업들이 야기하는 환경파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올 들어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가 기록적 폭염과 폭우 등 이상기후를 겪으면서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이 새삼 부각됐기 때문이다.

패션기업들도 이런 비판을 의식해 친환경 흐름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K2, 블랙야크 등 아웃도어 브랜드는 버려진 페트병에서 원사를 추출해 제품을 만들고 있다.

온라인에는 중고 의류를 거래하는 플랫폼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콜렉티브, 리클 등이 등장해 20~30대 여성을 겨냥해 점차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남이 입었던 옷은 찝찝해 구매를 꺼렸던 소비자 인식이 과거에 비해 크게 완화됐다”며 “중고 의류 구매를 친환경 활동으로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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