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불안 키울 재정 문제
재정건전성 악화는 경제를 서서히 병들게 할 뿐만 아니라 갑작스러운 금융 불안정도 초래할 중대 문제다. 마침 세계 각국은 코로나로 풀린 유동성을 거둬들이고 재정적자를 줄이는 공통 과제에 직면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달 ‘재정준칙으로의 회귀’를 주문했다. 한국 정부 부채에 대해선 선진 35개국 중 다섯 번째로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그럼에도 우리 국회는 ‘딴나라 국회’ 같다. 내년 예산안에서 방만한 구석은 없는지 현미경을 들이대도 모자랄 판에 거꾸로 증액 요구에 매달리고 있다. 기초연금 인상과 남는 쌀 의무매입 등을 주장하는 야당만 그런 게 아니다. 여당도 연말 소득공제 100만원 지원, 안심전환대출 요건 완화 등 예산 늘릴 궁리를 한다.
공교롭게도 국회엔 지난 9월 국민의힘이 발의한 재정준칙안(국가재정법 개정안)이 올라 있다. 그런데 두 달 가까이 논의가 시작되지 않고 있다. 정부 세제개편안을 더불어민주당이 ‘부자 감세’라며 반대하는 과정에서 기획재정위 소위원회가 꾸려지지 않은 게 직접적 이유다. 하지만 ‘지금은 돈을 더 풀 때’라는 민주당의 기본 인식이 변치 않는 한 소위 구성이 되더라도 논의가 진전되기 어려워 보인다.
국회 논의 미룰 때 아니다
재정준칙 제정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에도 정부 입법안이 마련됐다. 당시는 야당 등의 주장에 떠밀린 측면이 컸다면, 이번엔 정부·여당의 의지가 상당하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 대비 3% 내로 유지하고,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어서면 해당 비율을 2%로 낮추는 식으로 수치 목표를 뚜렷이 했다. 이를 두고 “기계적이다” “신축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고령화 등으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의심받는 상황에선 불가피하다. 미국의 물가상승이 코로나 극복 경기부양법안(CARES Act)과 그 집행예산 2조달러에서 촉발됐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정준칙이 있는 나라도 이랬을 정도다.문재인 정부는 적자국채를 마구 찍으면서 ‘좋은 부채’라고 강변했다. 금리가 쌀 때는 국채 발행에 따른 빚 증가가 GDP 증가 효과에 비해 적어 국가채무비율이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세계 경제가 초긴축에 들어가면서 설득력을 상실했다. 반성은커녕 야당이 된 지금은 복지 지출이 줄어들 수 있다며 재정준칙에 반대한다.
양극화 해소가 중요하더라도 복지 예산에만 기댈 일은 아니다. 그건 천수답 국가 경영이다. 재정준칙이 경제 안정과 지속 성장에 기여해 나라 살림이 튼실해지면 복지 예산에 득이 될 수도 있다. 재정준칙안이 또 잊혀져선 안 될 것이다. 민주당의 인식 전환과 성실한 논의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