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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의 종횡무진 경제사] 합스부르크家 유일한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전쟁 천재'의 콧대를 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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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 머리 위로 굉음을 내며 날아가는 ‘쌕쌕이’ 전투기를 보며 어른들은 한마디씩 했다. “아따, 그래도 사위 나라라고 신경 좀 썼구먼.” 민도(民度)가 다소 저조하다 보니 당시 전투기를 보낸 나라인 오스트레일리아와 영부인 프란체스카의 나라 오스트리아를 혼동해 벌어진 에피소드다. 지금도 오스트리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여전히 낮다. 한때 유럽의 5대 강국이었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설명하기가 까다롭다. 오스트리아 역사를 이야기하자면 합스부르크 가문과 신성로마제국이 줄줄이 따라 나온다. 가문은 쉽다. 부르봉가와 함께 유럽의 가장 유명한 왕실 가문인 데다 주걱턱을 합스부르크 턱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까닭이다(엄밀하게는 아래턱이 튀어나온 게 아니라 위턱이 들어간 상태). 문제는 신성로마제국이다. 중세 유럽사를 여행할 때 수시로 튀어나와 사람을 괴롭힌다. 지도에도 안 나오는데 대체 어디 있는 나라야?

현재의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체코,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에 걸쳐 있었던 신성로마제국은 수백 개 점포가 입점해 있는 ‘매머드 상가’로 이해하면 된다. 이 상가 입구에 걸려 있는 간판이 신성로마제국이다. 상가에는 떡볶이 가게처럼 매장도 작고 매출도 그저 그런 점포가 있는가 하면 보석이나 명품 브랜드를 취급하는 거만한 매장도 있다. 거만한 매장은 입주자 대표회의를 구성하면서 군소 업체의 권리를 동일하게 인정하지 않는다. 점유하는 매장 크기도 넓고 당연히 임차료도 많이 내는 자신들만이 상가의 대표를 뽑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유력 매장들이 선제후(選帝侯)다. 이 선제후들이 뽑은 상가 대표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다. 황제는 약간 ‘바지사장’이다. 명목상 대표일 뿐 유력 매장에 대한 영향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가장 유명한 표현은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은 더더욱 아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재미있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정확한 설명은 아니다. 신성로마제국은 엄연히 신성하며 로마제국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로마제국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일단 ‘신성’은 ‘홀~리(holy)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의미로 쓰였기 때문에 역사적인 연원을 모르면 오해하기 쉽다. 로마제국이라는 것은 상징이다. 유럽인들에게 고대 로마는 마음의 고향이다. 중국으로 치면 고대 왕조인 주나라와 비슷한데 그렇게 불러서라도 고대 로마의 적통이 이어진다고 믿고 싶었던 유럽인들의 바람이 투영된 명칭이다. 악담을 하신 분은 볼테르다. 계몽주의자라지만 그는 프랑스 사람이다. 적성 국가인 신성로마제국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했을 리 없다.

이 제국의 황제 자리를 15세기 중반부터 독점한 게 합스부르크 가문이다. 이 왕조의 유일한 여왕이 마리아 테레지아다. 아버지인 카를 6세는 아들이 일찍 죽자 불안해진다. 게르만 전통에서 여성은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카를 6세는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 주변 강대국에 이익과 영토를 나눠주며 여성 승계를 약속받는다. 불안은 현실이 된다. 딸만 연달아 셋이 태어났고 카를 6세가 사망하면서 장녀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스물셋의 나이로 왕위를 상속한다. 주변 나라에 오스트리아는 커다란 고깃덩어리로 보이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발톱을 드러낸 것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였다. 나폴레옹도 존경한 전쟁 천재였던 그는 카를 6세가 먼저 약속을 어겼다며 오스트리아 슐레지엔 지방으로 쳐들어온다. 핑계였고 실은 영토 욕심이었다. 당시 프로이센의 영토는 12만㎢로 오스트리아 6분의 1에 불과했다. 그런 프로이센에 면적 4만㎢에 석탄과 철이 풍부해 오스트리아 국고 4분의 1을 담당하는 슐레지엔은 너무나 탐나는 땅이었다.

사방이 늑대다. 도와줄 나라는 하나도 없다. 평균 연령 70대의 내각과 부실한 병력으로 그 어떤 대응도 할 수 없었던 마리아 테레지아는 왕위를 겸하고 있던 헝가리로 달려간다. 헝가리 의회에 도움을 청하며 여왕은 자신은 군주가 아니라 어머니가 되겠다는 연설을 라틴어로 한다. 품에 3개월 된 젖먹이를 안은 채였다.

헝가리는 합스부르크가의 지배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라틴어의 권위에 모성(母性)의 숭고함을 얹은 마리아 테레지아의 연설은 의회를 감동시켰고 배석한 헝가리 귀족들은 눈물까지 흘려가며 목숨과 피를 바칠 것을 맹세한다. 놀라운 이벤트였다. 카를 6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마리아 테레지아는 후계자로서의 제왕 교육인 행정, 법률, 군사와 정치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런 여성이 전쟁 천재와 맞서 싸웠고 프로이센을 끝까지 괴롭혔으며 협상 끝에 남편을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앉혔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위대한 여왕도 있고 탁월한 여왕도 있지만 둘 다인 군주를 꼽으라면 마리아 테레지아밖에 떠오르지 않는 이유다.

남정욱 작가·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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