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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과 가정이 완벽히 나뉜다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별 볼일 있는 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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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가로막힌 방 한가운데 여자 한 명이 테이블 위에 누워 있다. 여자가 눈을 뜨자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 “당신은 누구입니까.”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하지 못한다. “태어난 곳은 어디입니까.” 이어지는 질문에 어느 것 하나도 대답하지 못한다. 마침내 스피커에서 “완벽하군요”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애플TV 플러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세브란스: 단절’(사진)은 이렇게 알쏭달쏭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미국 할리우드 비평가협회 TV어워즈에서 ‘오징어 게임’을 제치고 주요 부문 5관왕을 차지한 드라마다. 지난 9월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상의 에미상 작품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제작사는 피프스시즌(옛 엔데버콘텐트)으로 CJ ENM이 1조원을 들여 인수한 스튜디오다.

스피커에서는 왜 완벽하다는 평가를 내렸을까. 대기업 루먼 인더스트리는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직원들의 자아를 나누려고 했다. 인간의 전체 자아에서 직장인으로서 자아만 분리해 회사의 비밀을 완벽하게 보호할 목적이다. 단절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퇴근하는 순간 회사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출근하면 가족과 지인 등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잊게 된다. 드라마의 첫 장면에 등장한 여자가 자신의 이름마저 까먹어버린 이유다. 드라마 이름 세브란스는 부제로 달려 있는 단절이라는 뜻이다.

‘자아의 분리’는 집에 돌아와서도 회사일에 시달리는 직장인에게 솔깃한 제안일 수 있다. 퇴근 후에는 완벽하게 자신의 삶을 즐길 수가 있다.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회식도 사라진다. 진정한 ‘워라밸(직장과 일 사이의 균형)’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행복할까. 그렇지 않다. ‘이니’와 ‘아우티’ 다시 말해서 직장의 자아와 가정의 자아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회사 안에 갇혀 있는 이니들은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직장을 탈출하려고 한다. 하지만 아우티는 이니에게 계속 직장에 남으라고 요구한다. ‘진짜 나’ 아우티의 행복을 위해 ‘가짜 나’ 이니에게 고통을 ‘아웃소싱(위탁)’하는 셈이다. 아우티도 마냥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직장 안에서 비윤리적인 일을 하고 있을 수 있다는 걱정에 사로잡힌다.

드라마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인간을 완성해주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주인공 마크S(애덤 스콧 분)도 ‘자아 단절 수술’을 받았다. 그는 아내를 잃은 트라우마를 지우기 위해 단절 수술을 사용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예상대로 해피엔드가 아니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어느새 하기 싫은 일, 마주하기 힘든 트라우마마저도 삶 속에 끌어안아야만 하는 이유를 찾게 된다.

드라마는 감각적인 연출과 음악도 돋보인다. 아무것도 없는 흰 벽, 동료들 간의 소통을 저해하는 칸막이 등의 공간 연출은 루먼의 ‘통제’를 뜻한다. 작품의 긴장감을 더해주는 음악은 에미상에서 시리즈 부문 최우수 음악 작곡상을 받기도 했다. 공개된 시즌1은 총 9개 에피소드로 이뤄져 있다. 중간엔 전개가 늘어지는 듯하지만 마지막 반전이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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