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비극으로 국민들이 애도하고 있는 가운데, 고위 공직자 등 사회 주요 인사들의 참사 관련 실언이 이어지면서 피해자 및 사망자 유족들에게 2차 가해를 자행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추모객들 사이에선 "당사자들에게는 '막말 논란'으로 지나가고 말겠지만, 피해자들에게는 평생의 상처"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 내외의 멘토 의혹이 불거졌던 '천공스승'은 지난 2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참사와 관련 "엄청난 기회가 온 것"이라고 주장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세계 정상들이 보내온 애도 메시지'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천공은 "좋은 기회는 자꾸 준다"면서 "우리 아이들은 희생을 해도 이렇게 큰 질량으로 희생을 해야지 세계가 우리를 돌아보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각국 정상들의 추모 움직임을 외교에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천공은 또 "우리 아이들 희생이 보람되게 하려면 기회를 잘 써서, 세계에 빛나는 일을 해야 한다"며 "다시 우리가 (세계에) 조인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천공의 발언이 세월호 참사 당시 김삼환 목사가 "하느님이 공연히 이렇게 침몰시킨 게 아니다. 나라가 침몰하려 하니 꽃다운 아이들을 침몰시키며 국민에게 기회를 준 것"이라고 말한 것과 겹쳐 보인다는 지적도 나왔다. 단, 윤 대통령은 천공에 대해 "알기는 하지만, 멘토 등의 주장은 과장된 이야기"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행정부 2인자'인 한덕수 국무총리의 '입'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 총리는 지난 1일 외신을 상대로 기자간담회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웃으며 농담하는 모습이 포착돼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한 외신 기자는 참사와 관련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라고 보냐"고 물었다. 이에 한 총리는 "젊은이들의 잘못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며 "경찰 수사에 의해서 책임질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건 정부의 무한 책임"이라고 답했다.
문제의 농담은 이후 동시통역 기기 음성 전송에 문제가 생기면서 나왔다. 한 총리는 통신 오류로 통역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자 "이렇게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요"라고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야권에서는 '대통령 다음으로 모든 책임을 지는 총리가 그런 자리에서 농담할 생각을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논란이 거세지자 총리실은 "경위와 무관하게 국민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밖에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찰이나 소방 인력이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10월 30일 긴급회의 브리핑)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이태원 핼러윈 행사는 주최 측이 없어 '축제'가 아니라 '현상'으로 봐야 한다"(10월 31일 MBC 뉴스데스크)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의 "질문 나온 건 다 소화를 해야 되는 건가요?"(10월 31일 이태원 참사 첫 브리핑) ▲박종현 행정안전부 사회재난대응정책관 "유명 관광지인 이태원 뒤에 '압사', '참사'라는 용어를 쓰면 관광객들이 가기를 꺼리는 효과를 줄 수 있다"(11월 2일 중대본 브리핑) 등의 발언이 빈축을 샀다.
지난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 앞 서울광장 합동분향소를 찾은 양 모(50대·여) 씨는 공직자 등의 막말·실언 논란에 대해 "당사자들한테는 논란 정도로 한번 지나가고 말겠지만, 피해자들이나 남겨진 유가족들에게는 씻기 어려운 평생의 상처가 될 것"이라며 "높으실수록 언행에 신중해야 한다는 당연한 말을 왜 일반 시민이 하는 상황이 매번 생겨나는지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김 모(20대·남) 씨는 "'무플(댓글 없음)보다 악플(악성 댓글)이 낫다'는 말이 있는데, 욕을 들어도 괜찮으니 주목받고 싶어서 일부러 실수하는 건지도 의심스럽다"며 "만약 본인들의 가족과 자식이 일을 겪었으면 과연 그렇게 행동할 수 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사회 곳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에 동참하는 시민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따뜻함이 전해졌다. 정부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면서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 가게들도 추모 분위기에 동참해 일시 영업 중단에 나섰지만, 유일하게 문을 닫지 않고 불을 밝히고 있는 가게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사연의 주인공인 이태원역 인근 뚜레쥬르 점주 오은희 씨는 JTBC에 "영업은 하지는 않지만, 소방관이나 경찰들이 어디 들어가서 잠깐 쉴 공간이 없어서 이곳에 와서 인터넷도 쓰시고 잠깐 커피라도 한잔 드시고 가라고 매장을 오픈하고 있다"며 "소방관과 경찰이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려 애쓰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모르는 체할 수가 없었다. 뭔가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