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 압사 참사 직후 정치권은 사고 수습과 재발방지책 마련 등을 위해 정쟁을 멈추고 초당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하루이틀도 지나지 않아 정쟁의 기미가 고개를 들고 있다.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거나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박희영 용산구청장)는 식의 태도는 분명히 문제다. 그렇다고 당장 책임론부터 꺼내는 건 순서가 아니다. 사고 원인을 면밀히 조사해보면 책임 소재와 정도가 밝혀질 것이고, 그때 책임을 물으면 된다.
그런데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벌써부터 정쟁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어제 의원총회에서 이번 사고에 대해 “명백한 인재이고 정부의 무능과 불찰로 인한 참사”라며 “대통령부터 총리, 장관, 구청장, 시장까지 하는 말이라곤 ‘우리는 책임이 없다’가 전부”라고 주장했다.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 행사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인파 사고 예방 안전관리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도 문제 삼았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사고 원인을 제도 미비 탓으로 돌린 것”이라고 했고 강득구 의원은 “국민은 국민을 지키지 못한 정부를 부정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참으로 기이하고 위험한 해석 방식이다.
대규모 인명피해를 동반한 재난과 사고는 정권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박근혜 정부 때 일어난 세월호 사고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때는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29명 사망),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47명 사망), 2020년 이천물류센터 화재(38명 사망) 등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꼬리를 물었다. 그렇다고 이를 특정 정권의 탓으로 돌리는 건 무책임한 정파주의다. 중요한 것은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사고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예상치 못한 사고를 막을 수 있을지,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린 잠재적 위험 요소를 미리 파악해 예방대책을 세우는 게 급선무다. 정쟁으로 허비할 시간에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재난위험백서’라도 만들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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