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의 표지 그림은 독자의 구매 심리를 자극하는 게 주요 목적이지만 어엿한 예술작품이다. 북적이는 서점을 벗어나 말끔한 미술관의 전시품으로 나들이를 떠나는 이유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서도 잡지의 표지 그림이 전시장 한쪽 벽을 장식했다. 이중섭, 박노수 등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이 정성껏 그려낸 역작이다. 컴퓨터그래픽은커녕 사진기도 귀하던 시절, 잡지의 표지는 ‘시대의 볼록거울’이었고, 화가들에겐 또 하나의 ‘캔버스’였다.
천경자·이중섭도 잡지 표지화 그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물방울 화가’ 김창열, ‘한국의 프리다 칼로’라 불리는 천경자…. 이들 미술계 거장의 공통점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문예지 ‘현대문학’의 표지화를 그린 화가라는 것이다. 1955년 1월 창간된 ‘현대문학’은 반세기 넘는 역사를 지닌 월간 문예지다. 창간 이후 지금까지 매월 표지마다 당대를 대표하는 미술 작품을 실어왔다. 이번 10월호에도 ‘한국의 1세대 추상화가’ 문미애 작가의 그림이 표지를 장식했다.
고(故) 이어령 선생이 창간한 문예지 ‘문학사상’은 표지를 문인들의 초상화와 사진으로 꾸미는 것으로 유명하다. 1972년 10월 창간호 표지는 구본웅 화백이 그린 ‘친구의 초상’이었다. 이 그림은 ‘천재 시인’ 이상의 외형뿐 아니라 작품세계까지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600호 특별판 표지에 그동안의 표지 그림들을 모자이크처럼 한데 모아 소개하기도 했다.
미술의 대가들이 잡지 표지나 삽화로 쓰일 그림이라고 해서 소홀히 했을 리 없다. 김환기는 수필 <표지화여담>을 통해 이렇게 고백한 적 있다. “나는 신문잡지에 컷 같은 것을 그리는 데 땀을 뻘뻘 흘린다. 번번이 약속기일을 넘기는 것도 성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재미난 생각이 안 나고 잘 되지가 않아서이다. (중략) 표지장정은 더욱 어렵다. 책의 얼굴이 되기 때문에 책임감이 더해진다. 속 몸이 아무리 예뻐도 어색한 옷을 입혔다간 우스운 꼴이 되고 말 것이 아닌가.” 당시 기술로는 축소 인쇄가 쉽지 않았다. 표지화를 책 크기에 맞춰 조그맣게 그리는 건 거장에게도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한 편의 작품으로서 표지 그림은 미술시장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국내 대표 경매사 케이옥션은 2020년 여름 아예 ‘거장들의 소품(小品)전’을 열었다. 잡지에 사용된 한국 미술 거장들의 작품만 모아 놓은 경매였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마르크 샤갈, 뱅크시 등이 표지를 장식한 잡지들은 책값과 무관하게 수백만원에 거래된다.
‘시대의 얼굴’ 잡지 표지
잡지의 표지가 주목을 끄는 이유는 단순히 회화적 완성도가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대를 이끄는 힘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잡지사들은 독자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 파격적인 시도를 마다하지 않고, 새로운 디자인은 그 자체로 기성 질서에 대한 도전을 상징한다.한국 최초 한글 전용 가로쓰기를 한 잡지 ‘뿌리깊은 나무’가 대표적이다. 1976년 이 잡지가 창간될 때만 해도 ‘잡지 제목을 한글로 적으면 망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조선시대 관습, 일제강점기 영향으로 한글을 낮춰 보는 분위기가 있었다. ‘뿌리깊은 나무’는 제목부터 본문까지 순한글을 지향하며 이런 낡은 관습을 깨부쉈다. 국내 잡지 중 처음으로 표지부터 내지까지 전문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맡긴 잡지기도 했다. 1980년 전두환 정부의 언론통폐합 때 강제 폐간되기 전까지 독자들의 폭발적 사랑을 받았다. 당시 구독자가 6만 명에 달했다.
요즘 잡지들은 어떤 잡지로 독자의 눈을 사로잡고 문제의식을 드러낼까. 동시대 젊은 예술가들은 여전히 잡지의 동료다. 민음사가 발행하는 문학잡지 ‘릿터’는 매 호 주제에 대한 시각 장르 아티스트의 작품을 표지로 싣는다. 이재민 그래픽디자이너, 류은지 일러스트레이터 등의 작품이 지금껏 ‘릿터’의 얼굴이 됐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