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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조각 부서진 몸 감추려 했던 프리다 패션…'세기의 아이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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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나를 나 자신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옷을 입는 스타일과 생활 방식으로 당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결정하라.” 이탈리아 패션 디자이너 잔니 베르사체의 조언이다.

옷이 개성과 정체성의 표현이라는 베르사체의 패션 철학은 멕시코의 국민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의 삶과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프리다는 패션을 예술의 표현 수단으로 사용해 개인적, 문화적, 정치적 정체성을 만들어낸 독보적인 예술가다.

패션은 프리다의 강력한 자기표현 방식이었다. 그를 20세기 패션 아이콘으로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 패션과 미술을 융합한 그의 작품과 프리다 패션은 1930~40년대 멕시코 문화의 상징이 됐고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엘사 스키아파렐리, 카를 라거펠트, 장 폴 고티에, 발렌티노 가라바니 등에게 영감을 줬다.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파리 패션박물관, 이탈리아 밀라노 문화박물관이 프리다의 그림, 드로잉과 함께 그의 의상, 장신구, 화장품 심지어 그가 착용하던 의료용 코르셋과 의족을 공개하는 특별전시회를 기획해 관객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프리다의 자화상은 그가 패션을 예술적 표현 수단으로 어떻게 활용했는지 잘 보여준다. 프리다는 멕시코 오악사카지방 자포텍 원주민 테후아나 여성들의 전통 의상과 전형적인 머리 장식인 리스플랜더를 착용하고 그림에 등장했다. 그의 이마 한가운데 새겨진 초상화 속 남자는 남편 디에고 리베라다. 디에고의 초상은 남편에 대한 그의 애착과 강박적인 사랑을 나타낸다.


프리다는 생전에 테후아나를 즐겨 입었는데 전통 옷을 선택한 요인은 두 가지다. 첫째는 크게 주름진 허리띠가 있는 긴 치마, 네모 형태의 블라우스, 땋은 머리와 꽃으로 장식한 헤어스타일, 이 세 가지로 구성된 테후아나 의상은 그의 신체적 장애를 가려주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는 점이다.

프리다는 6세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 다리를 절었다. 마른 다리와 절뚝거림으로 인해 학교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된 소녀는 의복으로 신체적 불균형을 보완할 방법을 찾았다. 그는 다리의 장애를 숨기기 위해 패턴이 들어간 주름진 허리띠가 있는 긴 드레스를 입었고 얇은 종아리가 두껍게 보이도록 오른쪽 발에 3~4개의 양말을 겹쳐 신었다. 바닥 길이의 긴 치마는 그의 마른 다리를 가려주고, 살랑거리는 치마의 움직임은 절뚝거리는 발걸음을 감추는 데 효과가 있었다.

프리다는 1925년 18세 때 더 큰 불행을 겪었다. 그가 타고 가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해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고 생전에 32번이나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로 인해 프리다는 석고와 가죽 코르셋을 착용해 몸을 지탱했고, 1953년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이후에는 의족을 착용해야 했다. 신체적 장애와 정형외과 장치에 몸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 상황이 옷에 대한 프리다의 태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중증 장애인이 된 프리다는 패션을 신체적 결점을 보강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런 한편으로 개성과 예술적 재능을 표현하는 치유의 도구로 활용할 방법도 모색했다. 자수와 패턴이 들어간 강렬한 색상의 긴 드레스, 프릴 앞치마, 선명한 프린지 장식이 달린 레보조 스카프, 수를 놓은 주름과 리본이 있는 머리 장식, 여러 가지 빛깔의 리본과 장신구를 부착한 정교한 헤어스타일 등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화려하게 외모를 꾸몄다.

테후아나를 활용한 프리다 패션은 머리와 얼굴, 상반신에 눈길을 집중시켜 하체에서 시선이 멀어지게 했다. 동시에 그의 매력적인 미모를 돋보이게 하는 이중 효과를 나타냈다.

다음으로 프리다는 토착 의상인 테후아나를 멕시코의 문화적 정체성과 민족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시각적 기호로 활용했다. 1910년 백인 지배자들을 상대로 인디오(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멕시코 혁명이 일어났다. 디에고와 프리다는 이 혁명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프리다는 인디오의 고유한 문화와 생활방식을 보존하고 부흥시켜야 한다는 정치적 신념의 적극적 표현으로 테후아나를 선택했다. 즉 자아 정체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멕시코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상징으로 전통 의상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화려하고 강렬하며 열정적인 프리다 스타일은 그의 작품만큼 많은 관심을 끌었고 특히 패션계는 열광했다. 신체장애에 굴복하지 않고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시킨 프리다 패션은 잡지, 패션쇼, 전시, 바비인형 패션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렌 아르잘루즈 파리 패션박물관 관장은 프리다에게 다음과 같은 찬사를 바쳤다.

“우리를 만들고,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의복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며, 이는 패션 아이콘이 된 이 비범한 여성의 영향력과 함께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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