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도시장의 ‘후발주자’인 우진산전이 최근 시장 점유율 과반을 차지해 업계 1위로 올라섰다. 반면 과거 1위였던 현대로템의 수주는 크게 줄어 3위로 떨어졌다. 최소 기술 수준만 통과하면 가장 낮은 응찰가를 써낸 업체가 사업을 수주하는 ‘최저가 입찰제’ 영향이다. ‘저가 수주’가 팽배해져 철도 기술력이 하향 평준화되는 데다 이를 이용하는 국민의 안전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우진산전은 2020년부터 2022년 10월 1조1945억원어치의 철도사업 수주를 따내 시장 점유율 53%를 차지했다. 2015~2017년 792억원에서 수주 규모가 15배로 급격히 늘었다. 다원시스 역시 2015~2017년 2314억원어치를 수주하는 데 그쳤으나 최근 3년간 7317억원으로 32%를 점유했다. ‘늦깎이’ 중견업체인 두 회사가 단기간에 급성장한 것이다.
반면 2015~2017년 7848억원어치 사업을 따내 1위였던 현대로템은 최근 3년간 3412억원으로 수주액이 뚝 떨어졌다. 시장 점유율(15%)은 3위로 내렸다. 급기야 현대로템은 2020년부터 다른 업체가 입찰조차 하지 않았던 소규모 전동차 물량만 간신히 수주하며 철도 사업의 명맥을 유지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현대로템이 수주한 사업은 2020년 서울 9호선 48량과 2021년 대구권 광역철도 18량, 충청권 광역철도 16량 등이 전부다.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 사업까지 따내던 현대로템이 국내에선 3위로 떨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업계에선 ‘2단계 규격·가격 분리 동시입찰제’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정 수준의 최저 기술점수만 넘기면 가장 낮은 응찰가를 써낸 업체가 사업을 수주하는 제도다. 경쟁사에 비해 기술력이 부족해도, 낮은 가격을 제시해 일단 수주를 따내는 ‘저가 전략’을 고수한 우진산전이 1등으로 올라선 배경이다. 이 같은 ‘최저가 낙찰제’는 기술과 가격을 종합 평가해 공급업체를 선정하는 선진국과 정반대 제도다. 국내에서도 방위, 건설 산업 등엔 종합심사 낙찰제를 도입했지만 철도 산업에서만 유독 이런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저가 수주한 업체들이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저가 부품을 수입하고, 이에 따라 철도 부품기업이 생사기로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다. 저가 수주로 인해 이윤을 남기지 못한 철도 업체들이 연구·개발(R&D)에 쓸 비용이 부족해진다는 점도 문제다. 업계 관계자는 “우진산전과 다원시스가 설계·공장 생산 등 소화 능력을 초과하는 과다한 수주로 납기를 지연시키고 있다”며 “차량 인도 및 신차 교체가 늦어지는 등 부작용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부품 협력 업체 역시 빈사 상태에 빠지고 있다”며 “국가 기간산업인 철도 기술력이 사장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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