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등 기계의 오작동이나 오판, 실수로 인한 우발적 핵전쟁의 위기는 자주 발생한다. 냉전 시대 150번 이상 발생했다. 한반도에도 우발적 핵공격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올해 9월 핵무력 정책에 대한 법령을 통해 발표된 북한의 핵 교리 때문이다.
북한의 교리는 두 가지 점에서 주목된다. 우선, 핵 사용 문턱을 대폭 낮췄다. 제6조에 규정된 핵 사용 5대 조건은 △핵무기 또는 대량살상무기의 공격 감행 또는 임박 △국가 지도부와 핵무력 지휘기구에 대한 핵 및 비핵 공격 감행 또는 임박 △중요 전략적 대상에 대한 군사적 공격 감행 또는 임박 △전쟁 주도권 장악 위한 작전상 필요 △국가 존립과 인민 생명에 파국적 위기 초래 시 등이다. 교리는 핵무기가 2013년 ‘핵보유국법’상 억제 수단으로부터 선제공격 수단으로 전환됐음을 웅변한다.
북한의 교리는 러시아와 파키스탄의 핵 독트린과 유사하다. 러시아는 1993년 옛소련의 핵 선제 불사용(NFU) 선언을 철회한 이후 수차례에 걸쳐 공세적 독트린을 채택, 핵 사용 여지를 확대해 왔다. 파키스탄은 인도에 대한 재래식 전력의 열세를 상쇄하기 위해 실전 사용을 목표로 핵능력 고도화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 거의 모든 재래전에서 선제타격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양국에 비해 현저하게 문턱을 낮췄다. 한·미 연합전력에 비해 북한의 재래적 전력이 열세이며 정권 생존에 핵무기가 필수라는 지도부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두 번째는 북한의 우발적 핵 공격 가능성이 커진 점이다. 법령은 국무위원장의 독점적 핵 사용 결정권을 유지하면서도 유사시 사전 위임된 지휘통제권을 가진 현장 지휘관이 보복 핵 공격을 감행하도록 하고 있다. 핵 지휘통제의 핵심은 최고지도자가 사용하고 싶을 때는 언제나 작동해야 하고 반대의 경우는 절대로 운영되지 않는 데 있다. 북한은 전술핵무기의 실전배치를 추진하고 있는데 분산 배치를 위해서는 지휘체계 위임이 필요하다. 이는 핵 지휘통제에 긴장관계를 야기한다. 아울러 사전 위임은 재앙적 오판을 초래하기 쉽다. 기술적 오류, 현장 지휘관의 오판, 착오, 항명, 배신 등으로 우발적 핵 공격의 가능성은 커진다.
최근 핵 비확산 체제의 기반이 동요하고 있다. 올해 열린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는 합의문을 채택하지 못하고 끝났다. 러시아의 거듭된 핵 위협으로 70년 이상 유지돼 온 핵 금기가 깨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격해지는 미·중 간 전략 경쟁은 북한의 모험주의를 부추길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계산된 핵 공격을 할 것인가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한·미 연합군의 압도적 전력에 정권이 궤멸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발적 공격 가능성이다. 북한이 핵 능력을 고도화할수록, 핵무기의 실전 전력화를 추진할수록 가능성은 커진다.
우발적 핵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북한 간 대화채널을 유지해야 한다. 아무리 남북 간 긴장이 고조돼도 최고지도자 간, 안보 및 군당국 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간 핫라인과 국세상선 공통망에 이르기까지 원활하고 신속한 대화채널을 상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대응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3축 체계를 조속히 구축하고 한국형 ‘아이언 돔’을 조기 전력화해야 한다. 자위적 방어를 위한 사드 기지도 정상화해야 한다. 강한 억지력을 바탕으로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는 여건을 만들어가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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