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세부 공항에 비상 착륙한 대한항공 여객기에 탑승했던 승객이 당시 상황을 전했다.
25일 세부 여행 전문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린 A 씨는 "사고 직후 구글맵 켜보니 공항 끄트머리에 비행기가 있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도로를 넘어 민가를 덮칠 뻔했으나 다행히 구조물과 충돌하며 멈춘 듯하다"며 "탈출 후 보니까 바로 앞에 민가였다. 민가를 덮치지 않게 일부러 구조물을 박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랜딩 자체는 부드러웠는데 비 때문인지 속도가 생각만큼 줄지 않고 미끄러진 듯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진짜 영화 한 편 찍었다"며 "비상 착륙한다는 기장의 방송 이후 랜딩 시도하자 모든 승무원이 소리를 지르는데, 처음에는 이 소리 지르는 것 때문에 더 놀랐다"고 설명했다.
이어 "승무원이 머리 숙여(head down) 반복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며 "무릎 사이에 얼굴을 박으라는 데 임산부라 쉽지 않았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런 상황에서 생각보다 스무스한 랜딩에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고 웃으며 손뼉 치며 안도하는데, 남편한테 '아직 고개 들지 마, 혹시 모르니까 고개 숙여'라고 하자마자 쾅쾅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미친 듯한 충격이 가해졌다"며 "5초 이상 충격이 가해진 것 같다. 비행기 전체가 정전되고 매캐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울고불고 난리 났다"고 말했다.
다른 승객은 "기장이 방송으로 '기상이 너무 안 좋아서 안전을 위해 고어 라운드(착륙시도 후 다시 상승)한다 했다"고 떠올렸다.
또 다른 탑승객은 "(두 번째 시도에서)활주로에 닿는데 '쾅' 소리가 났다. 소리가 너무 컸다"며 "당시 승무원들이 '머리 숙여'라고 소리를 질렀고, 이에 진짜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명 같은 것도 영화처럼 깜빡깜빡하고, 뒤에 있는 승객분은 막 울었다"며 "비상 착륙한다는 말을 듣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한 탑승객은 "비행기가 멈춘 후 바로 탈출하진 못하고 어디 화재가 있는지, 혹시 위험하진 않은지 승무원이 확인 후 미끄럼틀을 펼쳐 내려왔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24일(한국시간) 새벽 0시 7분쯤 필리핀 세부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던 KE631편 여객기가 활주로를 지나쳐 정지하는 사고를 냈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해당 여객기는 현지 기상 상황 악화로 2번의 복행(Go-Around)후 착륙을 시도했다가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여객기에는 승객 162명과 승무원 11명이 타고 있었는데, 모두 비상탈출 슬라이드를 이용해 안전하게 내려 지금까지 부상자는 없다.
현지 교민에 따르면 사고 당시 필리핀 세부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한 비가 쏟아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 측은 "기상 악화로 비상 착륙을 시도했다"며 "탑승객과 가족들에게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김현덕 한경닷컴 기자 khd998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