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위대한 나라지만 깊은 경제 위기에 빠져 있다. 영국 경제를 바로잡고 싶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 내정자는 지난 23일 트위터를 통해 보수당 경선에 출마한다고 공식 선언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가 차기 총리로 취임하면 리즈 트러스 현 총리의 감세안을 완전히 원점으로 되돌리는 작업부터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경제통’으로 불리는 수낵 내정자는 지난 7월 총리 경선 당시 트러스 총리의 감세안을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선(先) 인플레이션 억제, 후(後) 감세’를 외쳤던 그의 주장은 당시에는 힘을 얻지 못했지만 트러스 총리의 실책 이후 재평가받았다.
이민자 출신 금수저 총리
수낵 내정자는 보수당의 전형적 엘리트다. 부모 모두 인도계 이민자로 의사인 아버지와 약사인 어머니 밑에서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영국 최고 명문 사립학교인 윈체스터 칼리지를 졸업하고 옥스퍼드 링컨 칼리지,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을 거쳤다.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로 금융계에 진출했다.그는 2015년 35세의 나이로 하원 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테리사 메이 전 총리 내각에서 공공주택자치부 차관을 지낸 뒤 2020년 2월 보리스 존슨 내각에서 재무장관에 올랐다. 재무장관은 외무·내무장관과 더불어 내각의 최고 요직으로 꼽힌다. 1980년생(만 42세)인 그가 총리에 당선되면 1812년 취임한 로버트 젠킨슨(만 42년 1일) 이후 최연소 총리라는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수낵 내정자는 천문학적 재산을 보유한 재벌가 부인을 둔 ‘금수저’ 정치인이다. 그의 부인은 아웃소싱 대기업 인포시스를 창업한 ‘억만장자’ 인도인 나라야나 무르티의 딸이다. 영국 매체 더타임스는 수낵 내정자 부부의 자산이 7억3000만파운드(약 1조1900억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그의 화려한 엘리트 이미지는 최대 약점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그는 2007년 방영된 BBC 다큐멘터리에서 “친구들 중에 노동자 계급(working-class)이 없다”고 말해 비난받았다.
재정건전성 강화 나설 듯
수낵 내정자 앞에 놓인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경제다. 영국은 경기 침체 기로에 서 있다. 골드만삭스는 영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로 전망했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10.1%로 40년 만의 최고치다. 국채 가격과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21일 영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수낵 내정자는 재무장관 시절부터 재정건전성을 강조해 왔다. 코로나19로 늘어난 정부 부채를 줄이기 위해 법인세율을 19%에서 23%로 인상했고, 국민보험 분담금 비율도 1.25%포인트 올렸다. 트러스 총리와 경선에서 맞붙었을 때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전까지는 감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오는 31일 영국 정부가 발표할 중기재정계획과 예산책임처(OBR)의 경제 전망에 그의 구상이 담길지도 관심사다. 앞서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이 200억파운드 규모의 고소득자 대상 증세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불안정한 정국도 수습해야 한다. 수낵 내정자이 당선되면 2016년 브렉시트 투표 이후 다섯 번째 총리다. 총리 한 명이 3년을 채 못 버틸 만큼 자주 교체돼 정책을 일관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존슨 전 총리와 트러스 총리의 잇단 실책으로 급락한 보수당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것 역시 숙제다.
영국 여론조사업체 오피니움이 최근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총선이 치러질 경우 노동당이 하원 의석 중 411석을 얻어 12년 만에 정권을 탈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