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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파이 창업 스토리
지난 주말동안 넷플릭스에 새로 올라온 ‘플레이리스트’라는 미니시리즈를 시청했다. 실시간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Spotify)’의 창업 스토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드라마였다. 특이한 점은 한가지 스토리가 전개되는 방식이 아니라, 스포티파이 창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주요 인물들 5명의 스토리가 각각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홀로 코딩을 독학해 스포티파이를 창업한 다니엘 이에크, 처음에는 스포티파이에 반대하지만 이내 매료되어 운명을 함께하게 되는 음반사 대표, 스포티파이의 법적인 문제를 해결한 변호사, 기술적인 난재를 풀어낸 프로그래머, 그리고 창업 초기 5년동안 다니엘의 크고작은 실수들을 돈으로 만회해준 투자자까지. 스포티파이의 창업 스토리는 정말 한편의 영화로 나오기에 충분할 만큼 멋졌다.
드라마의 배경은 2006년 스웨덴이다. 당시 스웨덴에서는 ‘파이럿 베이’라는 무료 음악파일 토렌트 공유 사이트가 과연 합법이냐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그동안은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들으려면 CD를 구매해서 듣는것이 당연시 되었으나, 파이럿 베이가 등장한 후로는 이제 누구든 모든 음악 파일을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파이럿 베이 창업자들은 웹사이트에 광고를 게재하는 방식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지만, 소니 뮤직 등 음반사들은 CD 매출이 하락하여 인력을 감축해야 하는 사태에까지 직면하고 있었다.
스포티파이를 창업한 다니엘 이에크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파이럿 베이를 통해 공짜로 음악을 듣는것은 너무나 좋았지만 뮤지션과 음반사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였다. 한편으로는 음반사들이 틀어쥐고 있는 음악 유통에 대한 독과점을 깨트릴 필요도 있었다. 이용자들이 공짜로 음악을 즐길 수 있게 해주면서도 창작자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방식. 여기에 더해 몇분씩 걸려 음악 파일을 다운로드 받는게 아니라 마치 주크박스처럼 실시간으로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식이 스포티파이가 추구한 비전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음악과 음반 산업의 완벽한 디지털 전환이다. 스포티파이는 사람들이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버렸다.
변화를 받아들일 것인가 역행할 것인가
극중에서 다니엘 이에크는 ‘앞으로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될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리고 이 예언은 오늘날 어느정도 사실로 드러났다. 한 때 우편함을 가득채웠던 시즌맞이 50% 세일 쿠폰이 담긴 전단지는 오늘날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기업들은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디지털 쿠폰을 전달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새벽에 배달되는 종이신문을 보며 하루를 시작했지만 요즘 세대는 아이패드 화면으로 뉴스를 본다. 콘텐츠의 디지털화는 비단 음악 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지난 15년동안 빠르게 일어났고 우리의 삶을 바꿨다.
비트코인은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타격하던 가운데 세상에 등장했다. 아무도 검열할 수 없고 아무도 멈춰세울 수 없는 완벽히 탈중앙화된 결제 네트워크는 기존의 금융 질서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혁신이 아닌 골칫거리로 인식될 수 밖에 없다. 사실 아직은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이나 결제수단으로서의 도입률 등 규모가 작기 때문에 본격적인 위협이 되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금융 엘리트와 비트코인 진영의 마찰은 심해질 것이다.
‘플레이리스트’에 등장하는 소니뮤직의 스웨덴 지사장 페르 순딘도 처음엔 변화하는 음악 산업을 못마땅해 한다. 그는 주변 사람 모두가 파이럿 베이에서 공짜 음악을 다운로드 받아 듣는 중에도 여전히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원하는 CD를 재생해주는 ‘주크박스’를 즐겨 이용할 만큼 옛날 방식을 고집한다. 물론 그가 이러는데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음반사의 대표로서 창작자의 권리를 빼앗는 파이럿 베이가 눈엣 가시처럼 싫은 것이다. 뮤지션의 혼과 노력이 담긴 결과물을 돈을 내고 이용하지 않는 행위는 도둑질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힘들어하면서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그의 아내는 한번 변화에 적응해 보라고 남편을 설득한다. 페르 순딘 자신도 어릴때 펑크 록에 심취하여 부모님의 속을 뒤집어 놓았던 때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부모님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본인은 좋다고 믿었던 펑크 록이 70년대 주류 문화가 되었듯이, 스웨덴 사람들이 이제 CD보다 파이럿 베이를 선호한다면 그것을 주류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법도 배워보라고 한다.
이 조언은 스포티파이가 세계 최대의 음반사들과 계약을 맺고 저작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는데 감초같은 역할을 한다. 페르 순딘이 생각을 고쳐먹고 회사까지 옮겨가며 대형 음반사와 스포티파이의 저작권 계약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플레이리스트’에 등장하는 이 일화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디지털 혁신과 현실 사이의 적절한 타협은 어느 산업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으로 디지털화 되는 돈
여기까지 칼럼을 읽고나면 비트코인이 오히려 파이럿 베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둘 다 규제 영역에서 탈피하여 오직 이용자 중심의 탈중앙화된 네트워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연히 말하면 둘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파이럿 베이는 창업자들이 광고수익을 뮤지션, 창작자들과 나누지 않고 독점했던 반면, 비트코인은 모든 수익이 블록 생성과 검증에 기여하는 노드에게 돌아간다. 파이럿 베이가 음악 소비자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지만 한편으로 뮤지션이라는 또다른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 반면, 비트코인은 그 어떤 개인의 권리도 침해하지 않는다. 만약 정말 몸집이 커진다면 중앙은행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도는 되겠지만 말이다.
여기서 확실히 해야할 점은 중앙은행의 통화 발권과 유통에 대한 독점 시스템은 돈이라는 비탄력적 재화를 심각한 위기로 몰고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가처분 소득의 변화에 따라 소비를 줄일 여력이 있는 탄력적 재화인 음악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중앙은행이 시행하는 통화정책 때문에 돈의 가치가 하락하여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는 효과는 거의 증세나 다름없다. 때문에 인플레이션은 국가에서 몰래 매기는 세금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대체된다고 해서 꼭 금융 산업 자체가 고사하는 것은 아니다. 중앙은행이 없던 시절에도 상업은행과 증권업은 존재했다. 옛날에는 금과 은 또는 금화 은화와 같은 주화를 보관하는 비용과 거래의 지급을 위해 운반하는 비용이 컸다. 때문에 상인과 부자들이 안전하게 금괴나 금화를 보관할 필요성을 느껴 은행에 보관료를 내고 금괴와 금화를 맡겼다. 대신 은행으로부터 맡긴 금괴나 금화에 대한 보관증을 받았다. 어음 중개상, 환전상, 대금업자 등도 당시 그런 역할을 했다.
지금은 돈의 디지털화 시대이며 이는 자연스레 비트코인의 번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 속에서 금융 산업은 고사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할 것이다. 얼마전 미국에서는 전통의 뉴욕 멜론 은행이 암호화폐 커스터디 사업을 시작했으며, 블랙록과 피델리티 등 대형 자산운용사들도 암호화폐 사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혹자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CBDC가 디지털화된 돈이 아니냐고 반문하지만 그것은 무늬만 디지털화 된 돈일뿐 여전히 중앙은행 장부에 기록되는 신용화폐이다. 진정한 디지털 화폐는 전자적으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마음대로 임의대로 발행량을 늘리거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금과 같은 특성을 지녀야 한다. 스포티파이의 성공이 음악의 디지털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어 음악 산업을 크게 성장시켰듯, 비트코인의 성공이 돈과 금융의 디지털 전환으로 이어져 커다란 경제적 번영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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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크립토 투자 앱 샌드뱅크(Sandbank)의 공동 창업자 겸 COO이자 "웹3.0 사용설명서"의 저자이다. 가상자산의 주류 금융시장 편입을 믿고 다양한 가상자산 투자상품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샌드뱅크를 만들었다. 국내에 올바르고 성숙한 가상자산 투자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각종 매스컴에 출연하여 지식을 전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