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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보리밭 작가…"하루 8시간씩 그린 질긴 생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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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까지 한국의 채색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곱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때 한국 화단에서 채색화의 인기가 높았는데, 해방 후엔 ‘왜색 짙은 그림’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이런 편견을 깨고 묵묵히 한국 채색화 전통을 이어간 화가들이 있다. ‘보리밭 화가’로 알려진 이숙자 화백(80·사진)은 한국 채색화 전통의 맥을 잇는 적자(嫡子)다. 홍익대 동양화과에서 천경자, 김기창, 박생광 등 대가들의 가르침을 받았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채색화가 중 처음으로 단독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6년 만에 개인전을 연 이 화백은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평생을 애쓰며 살았다. 그림 그려서 먹고살려고, 한국의 채색화를 알리려고, 좋은 어머니가 되려고 그랬다”고 했다. 여든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요즘이 화가로서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항상 편안합니다. 아직 그림 그릴 힘이 있고 그림 외엔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매일 세상에 감사한 마음으로 삽니다.”

이날 이 화백은 막힘 없이 작품들을 직접 설명했다. 한동안 건강이 좋지 않아 개인전을 쉬었지만 이제 완전히 회복한 모습이었다. 그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일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다”며 “6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이라 대표작부터 올해 그린 신작까지 모두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편견을 깨부수는 걸 평생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일본에 유학 갔다 오면서 물감과 기법을 배워왔다는 이유로 아름다운 전통 채색화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채색화의 현실과 화가로서의 자신을 투영한 결과였을까. 이 화백은 1970년대부터 보리밭 그림을 발표했다. 밟힐수록 더 강해지는 존재인 보리와 보리밭을 통해 한국인의 질긴 생명력을 표현했다. 보리밭 그림은 작가 개인과 미술계에 변화를 가져왔다. 전통 기법으로 그려낸 그의 노랗고 푸른 보리밭 풍경은 일본화, 서양화와 다른 한국 채색화만의 매력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보리밭을 그리고 난 뒤 ‘스승인 천경자의 아류’라는 수식어를 뗄 수 있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며 웃었다.

이번 개인전에는 1980년대 작품부터 올해 신작까지 작품 세계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그림 40여 점이 나왔다. 이 화백의 전매특허인 보리밭 그림 외에 보리밭에 누운 여성의 나신을 그린 ‘이브의 보리밭’ 연작, 백두산 천지를 그린 대작 등을 함께 만날 수 있다. 이 화백은 “아직 작업 중인 그림, 그려야 할 그림이 많다”며 “남은 생을 나 스스로 그림에 온전히 바칠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다음달 19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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