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주식 투자에 성공할 수 있을까? 주식 투자에 성공한 사람 100명의 포트폴리오를 입수해 위험자산 비율, 주식 보유기간 등 20가지 투자 기준의 평균값을 구한 뒤 그대로 따라하면 어떨까? 그런다고 하더라도 투자에 성공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맛 좋은 사과와 귤이라고 해도 그냥 섞어 과즙을 만들면 맛이 이상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의 청년이 다양한데도 우리는 이들에게 MZ세대(밀레니얼+Z세대)라는 평균적인 낙인을 찍어 놓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평균을 마법의 기준으로 생각해 법과 규칙을 만들면 매번 발생하는 예외적 상황을 무시하게 된다. 평균의 함정에 빠지면 자유와 혁신은 사라지고 누구를 위한 법과 규칙인지 모르는 상황이 발생한다.
평균 자체가 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평균과 규칙을 ‘진리’처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관료제가 본질적인 문제일 수 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도구적 합리성, 문서와 규칙, 계층제에 바탕을 둔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현대사회를 ‘경직된 현대(solid modernity)’라고 불렀다. ‘법과 원칙’을 외치며 8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에게 노사 합의 규정 등을 들어 엄격한 법 집행을 하면서도 수억원의 법인차를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에게 그 원칙은 침묵한다. 이런 사회는 약자의 자유와 인권은 무시하는 무서운 사회로 전락하게 된다.
합리성을 강조하는 경직된 현대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21세기는 다양성, 양가성(兩價性), 불확실성, 불안정성 등으로 인해 예측 불가능한 ‘유동적 현대(liquid modernity)’의 세계다. 계속 오를 것만 같았던 집값도 떨어지고 있다. 한국 경제 기초는 튼튼하다고 확신하다가 갑자기 모래성처럼 무너지기도 한다. 강대국이 직접 개입된 전쟁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했다. 유동적 현대의 정부는 하나의 마법 같은 평균적인 정책보다는 분산(variance), 즉 상황별로 적합한 다양한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법과 규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행정보다는 고민하면서 정책을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기획하고 집행할 행정이 필요한 세상이 온 것이다.
확실한 숫자에 대한 맹목적 믿음 뒤에는 위험이 따른다. 2021년 전남 영광군 합계출산율은 1.87명으로 전국 1위였다. 출산장려금의 정책 효과 때문이라고 하지만 정작 2016년 397명이었던 0세 인구는 4년 뒤인 2020년 4세가 됐을 때 16% 감소했다. 출산장려금을 잠깐 받고 떠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합계출산율 전국 1위라는 숫자는 수많은 지방자치단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답이 출산장려금이라는 착각을 하게 한다.
또 정부는 공공기관 방만 경영을 이야기하며 2017년 493조원의 부채가 2021년에는 583조원으로 무려 90조원이나 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다시 살펴보면 동일 기간 공공기관 자산은 더 빠르게 늘어나 347개 공공기관 전체의 부채비율은 157.2%에서 151%로 오히려 감소했다. 한 번 더 자세히 살펴보면 공공기관 유형에 따라 부채비율은 각기 다르다.
예를 들어 공공기관 중 공기업의 부채비율은 176.7%에서 194%로 증가했다. 약 70조원의 공기업 부채 증가분 중 3분의 2가량은 한국전력과 LH(한국토지주택공사) 부채다. 공기업의 부채 증가 원인은 정부와 기업, 시민이 시장가격보다 싼값에 전기, 주택,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요구했기 때문이다. 서비스를 방만하게 이용한 시민과 기업은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이제 그 부담은 미래 세대가 지게 될 것이다.
현대 과학은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는 독단을 버리고 끊임없는 오류를 수정하는 노력이 지식을 성장시키는 길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강력한 지도자, 명확한 목표, 엄격한 규칙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정답이 있는 것처럼 법을 만들고 감사하고 처벌하고 지침을 만들면 유연한 현대로 변해 버린 세상에 적응할 수 없다. 평균 중심의 경직된 사회를 넘어 불확실성도 포용할 수 있는 유연한 사회의 정부와 시민이 돼야 한다. 인문학적 지식과 창의성, 다양성과 포용성을 갖춘 100만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디지털 인재 100만 명을 양성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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