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할 때 한 간부가 비행기를 놓칠 뻔 했다. 출장자들이 모두 참여한 카카오톡 채팅방에 '공항으로 떠날 시간이 됐다'는 공지가 올라올 것을 기다리다 벌어진 일이다. 이 때 카카오톡은 먹통 상태였지만, 해당 간부는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이 간부는 다른 간부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공항으로 이동해 비행기를 탈 수 있었지만, 정부 부처가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같은 민간 메신저를 업무용으로 지나치게 많이 활용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왔다.
공무원들끼리 카카오톡과 텔레그램으로 소통하는 것은 기재부 만의 일이 아니다. 사실상 전 부처가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경제부처 과장은 "과와 국 마다 단체 채팅방이 있는 건 기본이고, 같이 협업해야 하는 과나 국끼리 별도 채팅방도 수없이 만든다"며 "이 채팅방에서 각종 문서를 공유하고 의견을 조율한다"고 전했다.
대통령실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실 직원들은 업무용 메신저로 텔레그램을 주로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5일엔 텔레그램을 통해 카카오톡 먹통 사태 관련 보고와 지시가 계속 오갔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은 2014년부터 텔레그램을 주로 이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이러한 민간 메신저를 통한 소통은 해킹 위험에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외부에 공개되면 안 되는 자료나 확정되지 않은 정부 정책, 고위 간부들의 정무적 판단이 담긴 지시 등 민감한 내용들이 통째로 유출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카카오톡 먹통 사태처럼 메신저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하면 정부 업무가 순간 마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직자들은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을 활용한 업무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 외 대안이 없다고 항변한다. 서울과 세종을 오가며 업무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 모바일로 빠르게 의견을 교환해야 할 때가 많아 민간 메신저 활용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다.
아예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던 공무원 업무 전용 메신저 '바로톡'이 있다. 하지만 바로톡을 실제로 쓰는 공무원은 거의 없다는 전언이다. 로그인 과정이 복잡한데다, 파일 등을 다운로드 받을 수 없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이유다. 행안부는 보안 때문에 파일 다운로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지만, 오히려 이 기능 때문에 여러 차례 자료를 수정해야 하는 공무원들이 현실적으로 쓸 수 없는 메신저가 된 셈이다. 한 부처 사무관은 "PC와 모바일 등을 자유롭게 오가며 작업을 할 수 있는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과 비교하면 활용도가 지나치게 떨어진다"며 "바로톡은 사실상 아무도 안쓰는 메신저가 됐다"고 말했다. 바로톡 가입비율은 50%를 밑돌고 있다. 공무원 중 절반이 아예 설치조차 안했다는 의미다.
그나마 있던 바로톡의 운영은 조만간 중단된다. 행안부는 지난해 바로톡 기능을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국회가 관련 예산을 모두 삭감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활용도가 저조한 바로톡을 폐기하고, 운영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고, 행안위 소속 의원들도 이 의견에 동의했다. 대신 각 부처별로 민간기업의 메신저를 선택하고, 여기에 보안 기능을 추가해 전용 메신저로 쓰기로 했다. 카카오나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메신저에 보안기능을 넣어 특정 부처의 전용 메신저를 만든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런 방식도 해킹이나 에러 등에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민간 메신저는 아무래도 정보유출 가능성 등이 정부 주도 메신저에 비해 높은게 사실"이라며 "국회가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한 상황이라 민간 메신저를 개조해 쓰는 게 유일한 해법인데 어떤 결과로 이어질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