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와중에 대출금리 인상과 자산시장 냉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소비자가 늘 것으로 예상돼 최악의 세일 실적을 받아들 것으로 우려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그가 담당하는 남성 패션 부문의 가을 세일 매출은 1년 전보다 40% 가까이 늘었다.
○여전히 북적대는 식당·호텔
요즘 주요 상권의 인기 식당들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댄다. 21일 오전 11시30분 찾은 여의도 더현대서울 6층 식당가도 그랬다. 짜장면 한 그릇을 2만4000원에 파는 중식당 ‘도원스타일’은 대기팀이 10팀을 훌쩍 넘겼다.같은 날 오후 3시 서울 명동의 레스케이프호텔 로비도 체크인을 기다리는 투숙객들로 꽉 찼다. 조선호텔앤리조트 관계자는 “서울에 사는 ‘호캉스족’과 지방에서 서울 나들이를 온 가족들만으로도 서울 주요 호텔 객실 예약률이 80%를 넘는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한경-비씨카드 빅데이터 분석’에서도 나타난다. 서울의 주요 8대 상권으로 꼽히는 강남, 명동, 성수, 여의도, 을지로3가, 이태원, 잠실, 홍대의 지난달 넷째주(19~25일) 비씨카드 결제액(지하철역 반경 1㎞ 내 음식·유흥 가맹점 기준)은 거리두기가 해제된 4월 넷째주(18~24일)보다 8.0% 증가했다.
○‘소비 미스터리’ 이유는
금리 인상, 자산시장 한파, 인플레이션이라는 3중 악재를 감안할 때 이런 흐름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대출이자는 늘고, 보유자산은 쪼그라드는데, 물건값까지 올랐으니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통념을 깨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아스러운 소비 활황의 배경으로는 4월부터 시작된 엔데믹발(發) 소비심리 개선세가 아직 버티고 있다는 게 가장 흔하게 제시된다.이에 더해 2020~2021년에 걸쳐 우리 사회에 고착화한 구조적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많다. 정보기술(IT) 기업을 중심으로 급격히 인상된 임금이 유지되는 가운데 기업들이 아직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시가총액 기준 상위 10대 기업의 상반기 1인당 평균 급여는 5298만원으로, 전년 동기(4778만원) 대비 10.9% 늘었다. 직원 수는 30만1881명으로 같은 기간 1만2213명 증가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인플레 부담을 상쇄할 정도의 돈이 샐러리맨들 계좌에 매달 입금되고 있다”고 했다.
리셀 시장이 활성화하면서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필수 소비재를 자산으로 인식하게 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한 유통업체 최고경영자(CEO)는 “요즘 젊은이들은 신발, 가방 같은 고가 패션 아이템을 언제든 중고 시장에서 되팔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지르고 보자’는 행태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선진국에 비해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아 역(逆)자산효과가 덜 나타난다는 분석도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식, 펀드 등과 달리 부동산은 평가손실이 잘 체감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소비 둔화 시작됐다”
지금 같은 활황이 오래 이어질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김 명예교수는 “금리 인상이 실물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6개월 정도 시간이 걸린다”며 “내년 상반기쯤엔 소비 둔화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이미 밑바닥에선 경기 둔화가 한창 진행 중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서민들이 많이 찾는 대형마트의 4월 이후 월별 매출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대개 2~3%에 불과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4%(8월 기준)에 달하는 점을 감안할 때 물건 가격 상승에 따른 매출의 자연 증가분을 제외하면 실질 소비는 감소했다는 분석이다.
박종관/이미경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