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달러'의 습격에 장바구니 물가가 또다시 요동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수입 과일과 수입육, 와인, 위스키 등 해외에서 들여오는 식품 가격은 줄줄이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 초부터 이어진 물가 상승 릴레이에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진 소비자들은 생활 필수 상품 가격이 또 뛰어오를까 노심초사다. 식품업체들은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 부진,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원·달러 환율 급등이라는 악재까지 만나면서 원재료 수급 비용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당분간 수입 식품 가격 더 뛸 것"
18일 한 대형마트에 따르면 지난주(10~16일) 기준 수입 망고 매입 원가는 전년 동기 대비 30% 올랐다. 블루베리와 바나나의 매입 원가도 각각 24%, 17% 뛰었다. 수입육 가격도 심상치 않다. 수입 소고기는 전년 대비 20%, 돼지고기는 15% 매입 원가가 상승했다. 수입 식품 가격 인상 요인은 복합적이다. 이상기후로 인한 세계 주요 산지의 생산량 감소와 물류비, 인건비 등 생산비 증가로 올 초부터 가격이 뛰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비료·사료 가격 급등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환율 급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자 수입 식품 가격이 치솟았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9월 수출입물가지수'에 따르면 8월 수입물가지수는 154.38로 전월 대비 3.3% 상승했다. 농림수산품이 4.0% 올랐다.
업계에선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수입 식품 가격은 앞으로 더 오르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수입한 식품이 배를 타고 한국에 들어오는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환율 1400원 돌파에 따른 영향은 아직 소비자 판매 가격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당분간 수입 식품 가격은 구조적으로 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 '컨틴전시 플랜' 가동
환율 급등에 식품업체들은 초긴장 상태다. 수입 원재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또다시 제품 가격 상승 압박이 거세지고 있어서다. 한 대형 식품업체 최고경영자(CEO)는 "작황 부진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곡물 가격 급등에 이어 고환율이 새로운 복병으로 나타났다"며 "상품 가격을 계속해서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고민이 크다"고 토로했다.대형마트 등 유통업체들은 고환율에 대응하기 위해 각자 나름의 '컨틴전시 플랜'을 가동하고 있다. 이마트는 새로운 산지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 고환율에 작황 부진까지 겹쳐 필리핀산 바나나 가격이 급등하자 최근 콜롬비아와 에콰도르를 대체 산지로 발굴했다. 다음 달에는 과테말라산 바나나도 수입할 예정이다. 중남미산 바나나는 품질과 물량이 안정적이고, 필리핀산 바나나에 비해 가격이 5%가량 저렴하다.
결제 통화를 달러 대신 현지 화폐로 바꾸는 기지도 발휘했다. 이마트는 통상적으로 유럽에서 수입하는 식품도 대금 결제를 달러로 했지만, 달러가 나 홀로 강세를 보인 뒤로는 국가별 환율을 고려해 수입 원가를 더 낮출 수 있는 통화로 대금을 치르고 있다. 스페인과 네덜란드, 덴마크 등에서 주로 수입하는 냉동 삼겹살 결제 대금을 달러 대신 유로화로 치르는 식이다.
홈플러스는 세계의 식량을 무섭게 빨아들이고 있는 중국 시장의 움직임을 파악해 고환율 시대에 기민하게 대처하고 있다. 예컨대 중국의 소비가 크게 늘어나는 연휴가 지난 뒤 다음 연휴가 찾아오기 전까지 상대적으로 소비가 줄어드는 시기에 낮은 가격으로 물량을 매입하는 식이다. 올해는 중국의 중추절(음력 8월 15일)과 국경절(양력 10월 1일) 사이 킹크랩 물량을 집중 매입해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선보였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