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가 동네 구멍가게보다 못 하다. 전체 서비스가 마비 된다는 게 말이 되나."
카카오의 데이터센터 화재가 대한민국이 마비되는 '디지털 정전' 사태로 번졌다.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하는 계열사 134개 서비스가 일제히 블랙아웃에 빠지면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간 덩치 키우기에 급급했던 문어발식 경영에 비난이 쇄도하면서 카카오가 창사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의 계열사는 134개(6월 기준)에 달한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계열사만 해도 카카오를 포함해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카카오게임즈, 넵튠까지 5곳이다.
쇼핑·금융·게임은 물론이고 대리운전, 미용실 예약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잇따랐지만 카카오는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2018년 72곳이던 계열사는 4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 15일 일어난 카카오톡 먹통 사태로 카카오는 플랫폼 사업의 근간이 된 카톡의 '기본'을 지키지 못했다는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카카오가 서버를 둔 판교 SK C&C 데이터센터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카카오의 주력 서비스들이 모두 마비된 것이다.
먹통 사태 피해 일파만파…증권가 "일 최대 220억원 손해"
카카오가 공식적으로 밝힌 피해 서비스만 해도 10종이 넘는다. △카카오톡 메신저 △지갑 △다음(DAUM) 뷰와 카페 △카카오맵 △카카오페이 △카카오T △카카오내비 △카카오웹툰 △멜론 △픽코마 △지그재그 △모바일 게임 등이다.여기에는 카카오톡 본인인증 시스템을 이용하는 타 기업, 정부기관, 소비자의 피해 등은 빠져있다. 일례로 카카오지도를 연동해 민원신고를 받는 행정부의 안전신문고는 카카오 서비스가 먹통이 되면서 아예 서비스가 멈췄다.
국내 최대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도 카카오톡으로 로그인 방법을 제한해 이용자 상당수가 거래를 하지 못했다. 암호화폐 시장이 주말에도 24시간 열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이날 증권가는 카카오가 이번 사태로 하루 최대 220억원의 손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카카오와 자회사들의 주가 하락, 일부 임원의 자회사 주식 매각 등으로 최근 카카오를 둘러싼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사태까지 발생했다"며 "이번 이슈로 카카오와 자회사를 둘러싼 우려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카카오 먹통 사태가 터지고 사흘이 흘렀지만 서비스는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다. 이날 오전 6시 기준 카카오는 주요 13개 서비스 중 카카오페이·카카오게임즈 등 4개 서비스가 정상화됐고, 카카오톡 등 9개 서비스는 여전히 복구 중이다.
카카오 서버 한곳에 몰빵…"대응 매뉴얼 없나" 비판 거세
카카오뿐 아니라 네이버도 이번 화재가 발생한 판교 SK C&C 데이터센터에 서버를 두고 있다. 네이버 역시 검색, 뉴스, 카페, 블로그 등 일부 서비스가 일시적으로 불안정했지만 카카오만큼 전방위적 장애가 일어나진 않았다. 카카오와 달리 서버를 '이원화'했기 때문이다.네이버는 메인 서비스 서버를 춘천에 위치한 자체 데이터센터에 뒀다. 일부 서비스 서버는 판교 등에 분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카카오는 3만2000개 서버를 판교 SK C&C 데이터센터에 몰아넣었다. 지난 10년간 꾸준히 카카오톡 서비스 장애가 발생했고, 이달 초에도 메시지 송수신 장애로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었지만 번번이 "내부 시스템 오류"라는 이유를 댔다.
카카오는 카톡 먹통 사고가 디지털 정전 사태로 확대돼서야 '이원화'를 약속하고 나섰다. 카카오는 "이번 화재가 발생한 직후 해당 사실을 인지하고 즉시 이원화 조치 적용을 시작했다"며 "3만2000대라는 서버가 전체가 다운되는 것은 정보기술(IT)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방대한 서버와 데이터를 한 곳에 몰아넣은 카카오의 '악수(惡手)'에 이용자들은 원성이 거세다.
자신을 30대 직장인이라고 밝힌 A씨는 "중소기업에서 서버 관리 일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이지만 지진·화재 시 대처방안부터 복구 매뉴얼, 정전 시 무정전 전원 장치(UPS) 업데이트 매뉴얼을 갖추고 있다"며 "대기업이라는 카카오가 대응 매뉴얼이 없어서 허둥지둥하는 게 우습다. 서버 분할은 왜 안 했느냐"고 지적했다.
尹 "카톡, 국가 기반 통신망과 다름 없어…필요한 대응 검토"
구멍가게보다 못한 카카오의 주먹구구식 대응에 정치권도 목소리를 냈다. 대통령부터 여야가 한 목소리로 질타했다.윤석열 대통령은 카카오의 먹통 사태와 관련해 "이번(지난) 주말은 아마 카카오를 쓰는 대부분 국민이 카카오 통신망 중단으로 인해서 서비스 중단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민간 기업에서 운영하는 망이지만 사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국가 기반 통신망과 다름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독점이나 심한 과점 상태에서 시장이 왜곡되거나 더구나 이것이 국가 기반 인프라와 같은 정도를 이루고 있을 때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 당연히 제도적으로 국가가 필요한 대응해야 한다. 제가 주말에 과기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직접 상황을 챙기고 정부가 예방과 사고 후 조치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는지 검토시켰다"고 했다.
여야는 입법 차원의 재발방지책 추진 의지를 밝혔다.
국민의힘은 민간 데이터센터를 재난관리 시설로 지정하는 내용의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을 재추진하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재난관리 기본 계획 의무 대상에 카카오와 같은 부가통신사업자와 기업의 데이터센터를 포함하는 내용의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 마련에 착수할 방침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을 오는 2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종합국감장에 증인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는 카카오 먹통 사태의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등이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 메신저' 카톡을 기반으로 고성장한 카카오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어떻게 넘길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