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금융시장 불안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시장에도 전이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달 첫째 주 미국 CLO의 하루 평균 거래량이 약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로 지난 1년 간 일평균보다 두 배 급증했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최근 3주일 동안 미국 투자등급 CLO의 거래 규모는 약 130억달러(약 18조5000억원)로 집계됐는데 이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 3~4월(약 150억달러) 이후 최대다. CLO 시장에서 이 같은 이례적 상황이 벌어지는 배후에는 영국 금융시장 혼란에 따른 연기금들의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문제가 있다고 WSJ은 전했다.
CLO는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에 대한 금융사의 대출채권을 묶어 만든 파생상품이다. 회사채나 주택담보대출채권 투자에 비해 ‘고위험 고수익’으로 꼽힌다. 위험성이 크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관투자가들은 최근 10년 동안 CLO 투자를 확대해 왔다. 모든 자산 가격이 추락했던 2020년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도 CLO 투자는 비교적 ‘선방’하며 인기를 더했다. 영국 연기금들도 CLO 투자에 적극적이었다. 영국 연기금의 운용자산 중 최대 5%가 CLO로 추정된다.
문제는 영국 연기금들이 위기에 몰리면서 CLO 매각에 앞다투어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CLO 시장 규모는 약 1조달러(약 1420조원)로 파생상품 중에서는 중소형 축이다. 이 때문에 영국 연기금의 대거 매도가 미국 CLO 시장 전체를 뒤흔들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실제로 영국 정부가 지난달 23일 대규모 감세 정책을 발표해 영국 국채 금리가 급등(국채 가격 급락)하고 파운드화 가치가 하락한 뒤부터 CLO 매도가 늘었다고 WSJ는 분석했다. 영국 연기금들이 마진콜에 대응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CLO를 팔아 유동성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크다. 매도세가 몰리면서 투자등급 CLO 가격은 2020년 5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WSJ은 “최근 CLO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선진국 국채 금리의 변동성 확대가 금융시장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뒤흔들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고 우려했다. 그 중 하나는 인수 대상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활용하는 인수합병(M&A) 기법인 차입매수(LBO) 위축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소셜미디어 트위터 인수 시도가 LBO의 한 사례다. 미국 월스트리트 은행들에 따르면 LBO 자금의 60%가 CLO를 통해 조달된다. 이 때문에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 마무리에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그러나 칼라일그룹 등 월가 일각은 CLO 저가 매수에 나서며 차익을 노리고 있다. 영국 연기금의 집중 매도로 CLO의 최근 가격이 본질가치보다 떨어졌다고 봐서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