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들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는 ‘역(逆)전세난’이 심화할 조짐이다. 전세 시세 하락으로 2년여 전 계약한 전셋값을 세입자에게 돌려주기 어려운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 전세 매물은 1년 전 대비 각각 67%, 134% 급증한 가운데 전세가격 지수는 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10일 KB부동산 월간 주택가격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전국 전세가격 전망지수는 7월보다 4.3포인트 하락한 81.4를 기록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6년 이후 최저치다.
전세가격 전망지수는 KB부동산이 전국 4000여 곳의 중개업소를 대상으로 지역 전셋값이 상승할 것인지, 하락할 것인지 조사해 0~200 범위로 나타낸 것이다. 지수가 100을 초과하면 ‘전셋값 상승’을 전망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이며 100 미만일 경우 그 반대를 의미한다. 한국부동산원도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8월 0.25% 떨어져 2019년 4월 이후 4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밝혔다.
전세 매물은 빠르게 쌓여가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전세 매물은 서울 기준으로 지난해 10월 2만5111건에서 이달 4만1945건으로 67% 증가했다. 같은 기간 경기는 2만4519건에서 5만7511건으로 134% 불어났다.
역전세난 조짐은 전국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난 5일 충남 천안의 한 아파트 전용면적 84㎡ 집주인이 “전세 계약을 해주면 정품 샤넬 백을 주겠다”는 글을 올린 것도 역전세난의 단면이다. 이 아파트 해당 면적 전셋값은 지난해 8월 4억5000만원이었으나 지난달에는 3억4000만원으로 떨어졌다.
전세가격 하락에 세입자가 보증금을 지키지 못할 위험도 커지고 있다. 2년여 전인 2020년 8월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시행 후 계약한 집주인은 새 세입자를 구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서울 서초구 A공인 관계자는 “전세 시장이 완전히 세입자 중심으로 돌아서면서 전세 매물이 빠르게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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