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서부 아리에주(州)의 롱브리브 지하동굴.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이곳에서 40일 동안 갇혀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외부 사람들과의 연락은 일절 불가능하다. 스마트폰은커녕 시계조차 없다. 그저 졸리면 잠을 자고 배가 고프면 끼니를 먹는다. 오늘과 내일의 구분이 사라지면 인간은 어떻게 변할까.
<딥 타임>은 2021년 3월 14일부터 4월 24일까지 ‘시간이 사라진’ 40일가량을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간 적응력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한 이른바 ‘딥타임’ 프로젝트. 참가자 15명 중 여성은 7명, 남성은 8명이었다. 나이는 27세부터 50세까지 다양했다. 직업도 보석디자이너, 생물학자 등 제각각이었다. 책 저자인 크리스티앙 클로는 참가자 중 한 명이자 이 프로젝트 설계자다.
1952년 물과 식량 없이 대서양을 횡단한 알랭 봉바르, 1931년 비행풍선을 타고 인류 최초로 성층권까지 날아오른 오귀스트 피카르….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려는 시도는 반복돼 왔다. 딥타임 프로젝트가 도전 대상으로 삼은 건 ‘시간’이라는 개념이다.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가 결정적 계기였다. “여러 연구를 통해 코로나19로 이동이 제한되자 정신적으로 피로를 느끼고 불안한 미래로 고통스러워하는 프랑스인이 최대 70%까지 증가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는 시간 개념을 잃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다만 인간은 홀로 살지 못하는 존재라는 생각에 전례 없이 팀을 꾸려 고립 실험을 했다. 비상시가 아니면 나올 수 없도록 동굴 입구를 잠그고 관리자가 그 앞을 지켰다. 중도 포기자는 없었다.
참가자들이 내내 암흑 속 고행을 한 건 아니다.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지는 동굴들 가운데 일부에 전등과 부엌, 화장실을 갖춰뒀다. 햇빛 없는 공간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등 각자 일거리도 나눴다.
그러나 ‘시간’을 잊은 이들은 단기 기억을 잃어가고, 무기력증에 빠져들었다. 쳇바퀴 같은 삶에서 벗어나 보려고 동굴로 들어왔지만, 시간이 인간 사회의 기본 단위로 기능해왔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딥타임 프로젝트의 성과, 책의 묘미는 이후 참가자들의 대처에 있다. 시간이라는 질서가 사라진 동굴 사회, 참가자들은 토론을 거듭하며 공동체를 재건했다. 자전거 페달로 충전하는 전기를 아끼려면 조명을 어떤 기준으로 켜고 끌지, 정전됐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등을 함께 정했다. 그리고 이들은 협업하는 과정에서 서로 생체리듬을 맞추게 되고, 바깥세상의 시간과는 다른 동굴 사회의 하루 주기를 만들기에 이른다.
아름다운 결론이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결국은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인데 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서술돼 각 참가자의 고뇌나 감상을 들을 수는 없다. 책은 동굴 내 갈등 상황에 대해서도 말을 아낀다. 그럼에도 세계가 코로나19라는 동굴에 머물다가 세상 밖으로 막 발을 내디딘 지금, 딥타임 프로젝트의 결론은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우리는 동굴에 들어오기 전에 개인적으로는 전혀 할 줄 몰랐던 일을 같이 머리를 맞대면서 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다양성을 필요로 한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