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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발 뗀 납품대금 연동제…강제 도입은 得보다 失 클 수도 [김병근의 남다른 中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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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서울 퇴계로에 자리한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 중소벤처기업부가 마련한 ‘납품대금 연동제’ 설명회장은 수십 곳의 위탁기업 및 수탁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해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중기부 설명에 귀 기울여 듣던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경쟁적으로 손을 들고 질문을 쏟아냈다. 연동제 시범운영의 구체적인 방식을 묻는 질문이 많았다. 설명회에 참석한 한 기업 관계자는 “납품대금 연동제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진정한 상생 협력과 동반 성장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수면 위 부상하는 ‘납품대금 연동제’

원자재값 변동분을 납품대금에 반영하는 ‘납품대금 연동제’가 첫발을 뗐다. 중기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14일 서울 서초구 KT우면연구센터에서 납품대금 연동제 시범운영을 알리는 ‘납품대금 연동제 자율추진 협약식’을 열었다. 시범운영에는 현대자동차 포스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중공업 KT 등 위탁기업 41곳과 수탁기업 294곳이 참여 신청을 했다. 중기부는 선정평가위원회를 열어 이들 모두를 참여 기업으로 선정했다.

신청 기업 1호는 식품기업인 대상이 차지했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는 가장 많은 수탁기업과 함께 시범운영에 참여하기로 했다. 대기업 29곳뿐 아니라 중견기업 7곳과 중소기업 5곳도 시범운영사 명단에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납품대금 연동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 중 하나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원자재값 상승으로 하도급 업체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는 중기업계 호소에 공감을 나타내며 납품대금 연동제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당선 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연동제에 대한 비판 의견을 의식해 연동제 ‘법제화’를 국정과제에 포함하는 대신, ‘납품대금 연동제 도입 검토’를 국정과제로 채택해 추진하고 있다.

연동제가 이번 정부에서 처음 나온 화두는 아니다. 2008~2009년 이명박 정부 때도 추진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납품대금 연동제를 1순위 과제로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시행은 불발됐다. 기업들이 정부가 납품 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 질서를 왜곡할 우려가 크다고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를 불식하면서 원자재값 상승분을 납품대금에 합리인 선에서 반영하는 실효성 담보가 연동제 성공을 위한 관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중기부를 비롯한 연동제 관련 부처가 시범운영에 안주하지 않고 과정 전반을 예의주시하며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고 제도를 개선·보완하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납품대금 연동제 왜 제기됐나
납품대금 연동제의 시초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소기업중앙회가 연동제의 법제화 촉구를 결의한 게 발단이 됐다는 평가다. 정치권도 연동제 도입에 관한 하도급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연동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됐으나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2009년 연동제를 법제화하는 대신 하도급대금 조정협의제도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추진됐다. 같은 해 2월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는 “개정 이후에도 하도급 관행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납품대금 연동제 등을 다시 논의하자”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납품대금 조정협의제도는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 제도는 협동조합이 개별 기업을 대신해 납품대금 조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지난해 협동조합이나 중기중앙회가 수탁기업을 대신해 협의를 대행한 실적은 0건이다. 대부분 중소기업이 대기업에서 거래를 끊을까 봐 조정 신청을 못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연동제 논의가 다시 활발해진 계기는 코로나19 확산이다. 공급망 차질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연동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재차 힘을 얻었다. 중기중앙회가 발표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위한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원재료 가격은 전년 대비 평균 47.6% 오른 반면 납품대금 상승률은 10.2%에 그쳤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 영업이익률은 7.0%에서 4.7%로 2.3% 포인트 감소했다.

중기청이 중기부로 격상되고 하도급법뿐 아니라 상생협력법도 발의되는 등 저변이 확대됐다는 게 14년 전과 다른 점이다. 중기부는 올해 국내 글로벌 대기업의 구매 담당 임원, 중소기업 대표, 전문가 등 30여 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연동제 도입에 총력을 다했다. TF는 지난 6월 이후 12차례 회의를 열고 합리적인 연동제 설계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미국, 호주 등 해외의 납품대금 연동 가이드라인을 참고하고 공정위와 조율을 거쳐 연동제에 필요한 특별약정서 및 시범운영 방안을 완성했다.
시범운영 어떻게 하나
납품대금 연동제 시범운영은 ‘납품대금 연동 특별약정서’를 활용해 수·위탁거래 계약을 맺고 특별약정 내용에 따라 납품대금을 조정하는 게 핵심이다. 특별약정서는 연동제를 도입하고자 하는 기업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을 미리 협의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이를 기업 간 협의를 통해 기재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시범운영은 6개월 동안 기업 간 자율협약 방식으로 이뤄진다. 위탁기업과 수탁기업은 주요 내용이 동일한 중기부의 ‘납품대금 연동 특별약정서’나 공정위의 ‘하도급대금 연동계약서’ 중 하나를 선택해 협약을 맺으면 된다. 기존 거래 계약에 추가로 연동제 관련 특별약정을 맺는 식이다. 특별약정서에 포함되는 △조정 대상 물품 △주요 원재료 △원재료 가격 기준 지표 △기준 시점과 비교 시점 △조정 요건 △조정 주기 △조정일 △조정대금 반영 시점 △납품대금 연동 산식 등은 계약 주체인 기업이 정한다. 노형석 중기부 거래환경개선과장은 “중기부가 다양한 적용 예시를 담아 선보인 ‘특별약정서 가이드북’을 참고할 만하다”고 했다.

중기부는 세 가지 원칙하에서 시범운영할 계획이다. 대기업 등의 자율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게 첫째다. 시범운영 참여 기업에 대한 정부 포상, 장관 표창 등 다양한 유인책(인센티브)을 제공하는 게 그다음이다. 연동제의 지속적인 확산이 마지막이다. 시범운영 기업 선정은 일단락됐지만 지난달 21일부터 상시 접수 체제로 전환해 누구든 언제든지 참여할 수 있다. 이들 기업도 연동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현장은 기대 반 우려 반
현장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설명회에 참석한 A사 관계자는 “원자재값 상승분을 납품대금에 제때 반영하면 숨통이 트일 것”이라면서도 “얼마나 자주 또 어느 정도 가격이 변동할 경우 대금을 얼마나 조정하는 게 합리적인지를 정하는 게 어려운 선택일 것”이라고 말했다. B사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납품대금이 늘어날 수 있겠지만 떨어지면 반대로 납품대금도 줄어들 것”이라며 “공급망 차질로 인한 원자재값 상승이 이미 정점을 찍어 당분간 단가가 하향될 일만 남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등 심경이 복잡하다”고 했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 수탁기업인 다보정밀의 문광식 대표는 긴 호흡으로 납품대금 연동제에 임할 것을 당부했다. 문 대표는 “3개월에 3% 변동하면 단가를 평균해 조정하고, 5% 변동하면 조정 단가를 즉각 적용하는 식으로 연동제를 운영해 코로나19 여파로 원자재값이 70% 급등하는 속에서도 큰 피해 없이 잘 넘겼다”며 “대기업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거래 관계가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대금 조정에 생산성과 품질로 보답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회사는 4년여 전부터 현대두산인프라코어와 자체적인 납품대금 연동제를 시행해 왔다. 이번 시범운영에도 참여해 특별약정을 추가로 맺을 예정이다. 그는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운 데다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시스템화되기 때문에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다”며 “단가 상승 또는 하락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위탁기업과 수탁기업이 중장기적으로 같이 경쟁력을 제고하는 방안의 하나로 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제화 논란과 과제
일반 국민 대상 여론조사에선 10명 중 9명이 납품대금 연동제 도입 및 법제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기중앙회가 8월 만 19∼69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응답자의 91.1%는 연동제가 대·중소기업의 양극화 해소와 동반성장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 같은 이유로 조사 대상의 88.7%가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다만 법제화 방향과 관련해선 과반이 ‘주요 조건만 법으로 정하고 세부 사항은 자율로 정해야 한다’(51.4%)고 답했다.

경제단체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시범운영이 좋은 성과를 내길 바란다”면서도 “강제로 하는 법제화는 시장 원리에 맞지 않아 전혀 다른 문제”라고 했다. 그는 “시장 원리와 계약의 자유 등 대원칙을 훼손할 수 있어 시범운영이 법제화로 가기 위한 수순이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간 사적(私的) 계약에 국가가 개입하는 형태여서 민법 체계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법제화에 따른 물가 상승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원가 상승분이 납품가에 반영돼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 속도가 더 빨라질 공산이 크다는 우려다. 이와 관련해 이영 중기부 장관은 “납품대금 연동제로 인한 소비자 물가 상승 우려가 전혀 없다고는 볼 수는 없다”며 “납품대금 인상분을 시장에 내보낸다면 연동제가 정착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부담이 가지 않도록 최대한 중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도 법제화에 신중한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납품대금 연동제의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다”면서도 “시장의 가격 기능을 법률로 통제하는 것은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밝혔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이화령 KDI 연구위원은 지난달 27일 발표한 ‘납품대금 연동제에 대한 경제학적 논의’ 보고서를 통해 “납품대금을 원자재 가격에 연동해 위험을 분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거래 상대방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으나 이를 의무화한다면 효율성이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정 계약 형태를 강제하기보다는 협상력 격차를 완화하고 남용 행위를 규율하는 데 정책적 노력을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결국 기업들의 전향적인 자세가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김세종 이노비즈정책연구원장은 “정부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라며 “원청기업을 비롯한 참여 기업의 적극적인 의지와 열린 사고가 연동제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김 원장은 “단기적인 가격 상승 또는 하락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경쟁력 향상 관점에서 납품대금 연동제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기과학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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